▲ 대전 동구의 한 무인편의점. 15평 남짓한 공간에 조리식품서부터 세면제, 휴지, 음료수, 라면 등 자취생들의 겨냥한 물품들이 자동판매기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한켠에는 식음료대와 테이블까지 갖췄다.

 

주말을 맞아 장거리 여행에 나선 양 모(33·여) 씨. 양 씨는 대전에서 승용차로 고속도로를 타고 전북 변산의 한 리조트에 도착해 짐을 풀 때까지 사람이 아닌 기계를 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속도로 요금은 톨게이트에 설치된 무인요금소에 직접 지불했고, 리조트 키는 미리 예약한 번호를 무인자동체크인기기에 입력해 수령했기 때문이다. 그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고 했다.

내년도 최저시급이 7530원으로 확정됨에 따라 인건비 절감의 대안으로 손꼽히는 무인시스템 보급에 불씨가 당겨지고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부터 셀프주유소 등 생활 곳곳에 자리잡은 무인시스템의 가속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대전 동구 대학가 인근 한 무인 편의점을 찾았다. 지난 2월 문을 연 편의점은 15평 남짓한 공간에 조리식품에서부터 세면제, 휴지, 음료수, 라면 등 자취생들을 겨냥한 생활필수품들이 자동판매기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한쪽에는 식음료대와 테이블까지 갖췄다.

대전에 본사를 둔 이 회사 대표는 “일반 편의점에 비해 인건비가 들지 않고 초기 창업비용도 훨씬 저렴한 편이다”며 “알바생들이 속을 썩이거나 인건비를 걱정한 예비 창업자들이 특히 큰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안 발표 후 가맹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무인편의점은 현재 대전 대학가 3곳을 포함해 전국 17군데에 문을 열었고 2군데가 개업을 준비 중이다.

바로 맞은편 편의점에서 일하는 최 모(22·여) 씨는 “저런 곳이 늘어나면 나 같은 사람이 줄어들지 않겠냐”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무인시스템은 편의점뿐만 아니라 식당가의 무인주문대(키오스크), 대형마트의 셀프계산대, 코인노래방, 셀프주유소 등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의 한 패스트푸드 전문매장도 지난 2월 무인주문대(키오스크)를 갖췄다. 이 업계 관계자는 인력감소를 위한 설치가 아니라 고객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노동자 측의 목소리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알바노조·알바연대 관계자는 “인력감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앞으로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며 “이미 한 대형패스트푸드점에서는 도입 이후 인력줄이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인주문대는 둔산동 번화가의 식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손님 정 모(36) 씨는“주문을 정확하게 받아 음식이 잘못 나올 일은 없겠지만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인건비 절약 취지로 도입된 셀프주유소는 대전에만 100여 개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대전시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일반주유소 사장들은 벌써부터 내년 임금인상안에 대비, 인건비 절약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셀프주유소로의 전환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어 “셀프주유소는 안전관리자 1명이 필수로 있어야 해서 무인점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인건비 절약 효과는 있다”고 설명했다

인상된 최저임금 시행까지는 몇 개월 남지 않은 지금, 사용자 측의 무인화 기류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면서 이에 따른 노동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글·사진 박현석 기자 phs2016@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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