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교수

 

만횡청류 ‘청천에 떠있는 기러기’
 

청천에 떠 있는 기러기 한 쌍 한양성대(漢陽城臺)에 잠깐 들러 쉬어가겠느냐
이리로서 저리로 갈 때 내 소식 들어다가 님에게 전하고 저리로서 이리로 올 제 님 소식 들어 나에게 부디 들러 전하여 주렴
우리도 님 보러 바삐 가는 길이니 전할지 말지 하여라

‘청구영언’의 ‘만횡청류’에 실려있는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다. 사설시조는 농·낙·편 계통의 악곡들로 주로 노랫말이 장형인 것들을 부를 때 사용된다.

한양성대는 한양의 궁궐이다. ‘기러기야 잠깐 서울을 들려가거라. 그래서 오가는 길에 님께 소식 전해주려무나’라고 하늘을 나는 기러기에게 부탁하니, 기러기는 ‘우리도 바삐 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그렇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라고 답한다.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자기도 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어렵다는 것이다.

‘달거리’ 단가에 ‘청천에 울고 가는 저 홍안 행여 소식 바랐더니 창망한 구름 밖에 처량한 빈 댓소리뿐이로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기러기는 예로부터 사람이 왕래하기 어려운 곳에 소식을 전해주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고,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 처량한 정서로 인식되어 왔다.

어이 못 오더냐 무슨 일로 못 오더냐
너 오는 길 위에 무쇠로 성을 쌓고 성 안에 담 쌓고 담 안에 집을 짓고 집 안에는 두지 놓고 두지 안에 궤를 놓고 궤안에 너를 결박하여 놓고 쌍배목 외걸새에 용거북 자물쇠로 수기수기 잠갔더냐 네 어이 그리 아니오더냐
한 달이 서른 날이거니 날 보러 올 하루 없으랴

쌍배목은 두 배목을 양쪽에 박고 문고리를 걸도록 만든 쇠다. 배목은 문고리를 거는데 또는 문고리를 문짝에 다는 데 쓰는 물건이다. 용거북 자물쇠는 용이나 거북이 모양을 한 자물쇠다. 수기수기는 ‘꼭꼭, 숙이고 숙이고’의 뜻으로 몇 번이나 확인하여 꼭꼭 채우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왜 못 오십니까? 길을 철성으로 막고, 철성 안에 집, 집안에 뒤주, 뒤주 안에 궤를 놓고 그 안에 꽁꽁 묶여 있습니까? 뒤주와 궤가 단단히 잠겨 있습니까? 그래도 한 달 중에 하루도 여유가 없으시다는 말입니까?

화자는 님이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님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왜 못오시나요’로 반복·강조하고 있고, 여기에 불가능한 상황을 동원, 님이 못 오는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그래도 30일 중 하루는 왔어야 하지 않으냐 하면서 원망 섞인 힐문을 하고 있다. 오지 않을 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리도 사랑이란 짠하고 애잔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작품 하나를 더 감상해본다.

세상에 있는 온갖 것들 중에서 무엇이 무서운가
호랑이, 승냥이, 이리며, 이무기, 독뱀, 지네, 거미, 밤귀신, 사나운 귀신과 온갖 도깨비, 요괴, 사악한 기운이며 여우귀신, 몽달귀신, 염라사자와 시왕차사를 모두 다 겪어 보았지만
아마도 님을 못 보면 애간장이 타서 사라져 죽게 되고, 보더라도 놀랍고 떨려 팔다리가 저절로 녹아서 홀린 것처럼, 취한 것처럼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님이신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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