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도전, 실험

▲ 총 348대의 낡은 TV, 수족관, 박제된 거북, 고물 전화기, 고물 축음기, 부서진 자동차, 부서진 피아노 등 버려진 물건들로 제작된 '프랙탈 거북선.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일본과 독일에서 음악과 미학을 공부하고 요셉 보이스, 조지 마퀴나스, 존 케이지와 함께 1960년대 음악과 연극, 미술이 결합된 예술 형식인 해프닝을 펼치는 ‘플럭서스’ 활동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5년 휴대용 비디오 촬영기인 캠코더가 발명돼 판매가 시작되자 백남준은 판매 첫 날 캠코더를 구입하고 이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예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TV 부처’, ‘다다익선’, ‘Bye Bye Kipling’, ‘TV 정원’ 등 TV와 비디오를 이용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그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현대 예술의 살아있는 신화’, ‘피카소, 모네 등과 함께 20세기를 빛낸 예술가’로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그의 작품 ‘프랙탈 거북선’은 한산도를 재현한 배경 두 부분과 거북선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거북선은 총 348대의 낡은 TV, 수족관, 박제된 거북, 고물 전화기, 고물 축음기, 부서진 자동차, 부서진 피아노 등 버려진 물건들로 제작됐다.

과학기술은 늘 새로운 것을 향해 변화해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조금만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 자동차, 축음기, 전화기, 사진기, TV 등 과학기술 문명의 발명들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고물’이 되고 조금 더 지나면 ‘쓰레기’로 버려진다. 반면 거북은 파충류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동물인데도 거의 변화하지 않은 동물이다. 이러한 거북은 장수의 상징이며 그 거북의 모양을 본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생명을 구해줬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존재다.

백남준은 낡고 버려진 전자제품을 화려한 영상과 네온으로 꾸며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거북선’을 탄생시켰다. 전자문명 시대에 태어난 이 새로운 거북선은 인류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잘못된 과학기술을 향해 역설적으로 힘찬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진정한 과학기술이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만이 비로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