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IOC 위원 사퇴…한국 스포츠외교력 약화 우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사퇴함에 따라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변하는 IOC 위원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위원 1명만 남았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은 뒤 3년째 투병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정상적인 대외 활동이 어려워지자 이 회장의 가족은 IOC에 이 회장의 위원직 사퇴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개인 자격으로 IOC 위원에 선출됐다.

그 전까지 한국의 IOC 위원은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1명이었다.

이 회장이 정년(80세)을 5년 앞두고 자진해서 사퇴하면서 한국 IOC 위원 수는 21년 전인 1996년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선 1950년대 중반부터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 씨가 전임자의 배턴을 물려받는 식으로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을 지냈다.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되고 이건희 회장이 1996년 IOC 위원이 되면서 한국도 동시에 2명의 IOC 위원을 거느린 나라가 됐다.

IOC 위원의 정원은 총 115명으로 개인 자격 70명, 선수위원 15명, 국제경기단체(IF) 대표 15명,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자격 15명으로 구성된다.

김 전 부위원장과 이 회장은 모두 개인 자격으로 선출됐다.

그러다가 박용성 국제유도연맹 회장이 IF 대표 자격으로 2002년 IOC 위원에 선출되면서 우리나라는 IOC 위원 3명을 둔 스포츠 외교의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2004년 체육 단체 공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 전 부위원장이 '윤리상 회복'을 기치로 내건 IOC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하자 2005년 스스로 IOC 위원직을 사퇴하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전성기는 금세 막을 내렸다.

박용성 회장도 두산그룹 경영에 전념하겠다며 국제유도연맹 회장직을 2007년 사퇴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IOC 위원 자격을 잃었다.

이건희 회장만 IOC 위원으로 남은 상황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2008∼2016년), 유승민(2016년∼)이 각각 8년 임기의 선수위원에 당선돼 다시 복수 IOC 위원의 계보를 이었다가 이제 다시 유승민 위원 1명만 남게 된 셈이다.

체육계에선 이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가 곧 한국 스포츠 외교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굴지의 대기업 총수인 이 회장은 삼성이라는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 세계 IOC 위원과 활발하게 교류해 한국 스포츠 외교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이 삼수 끝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된 데도 이 회장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처럼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지닌 이 회장과 달리 그야말로 혈혈단신인 '초짜' 유승민 위원에게 막중한 스포츠 외교의 '해결사' 노릇을 바라는 건 무리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당장 정부 차원에서 국내외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량감 있는 인사를 동원해 IOC 위원 만들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NOC 위원장 자격으로 IOC 위원에 입후보했으나 최종 추천 명단에 들지 못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 등 인접한 강대국과 대등한 기량을 펼쳐온 만큼 그 위상에 맞는 스포츠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95명인 IOC 위원 중 중국 위원은 3명, 일본은 1명이다.

위자이칭 국제우슈연맹 회장 겸 IOC 부위원장과 다케다 쓰네카즈 일본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 국제 스포츠계에서 오랜 기간 거물급으로 평가받은 인사들이 각각 중국, 일본의 목소리를 IOC에서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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