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 위원장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이 막 지났다.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앞으로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는 올해 말까지 가급적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부 스스로도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고 ‘고용-복지-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위해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정규직 전환과 차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들의 목소리도 듣고 노동계와 협의도 거쳤고 그 내용도 지난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서 진일보했다며 노동계도 이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줬다.

지난 한 달 동안 정규직 전환은 계획대로 진행돼 왔을까?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은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다는 것 말고는 없다. 이 부분은 IMF 외환 위기 이후 비용 절감과 탄력적 인력 운용이라는 미명으로 정부가 강압적으로 외주 용역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었다. 노동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해 왔고 이제 직접 고용이 이뤄지면 중간 착취를 막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자회사 설립이라는 꼼수를 써서 사실상 현행대로 유지하려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발 뜬소문이기를 바란다.

문제는 직접 연구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연구직들이다. 아직까지 어느 출연연도 연구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계획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PBS)다. 기존 정규직들도 연구과제 수주를 통해 자신의 인건비를 벌어야 하는 제도에서는 정규직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정규직 전환 이후에 그들의 인건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연구과제 책임자들이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민하다 보니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실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아무 대책도 없다. 직종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취지가 반영되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하라면서도 예산 확보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각 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해놓고 기껏 호미나 곡괭이 하나 던져준 셈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부가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뿐이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막연하게 희망을 품고 있을 비정규직들은 정작 이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 정부는 기관별 이해 관계자와의 협의를 통해 채용 방식을 결정하라고 했지만 연구기관들은 자신들의 이해득실만 놓고 고심할 뿐 비정규직 연구원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협의하거나 연구원들의 요구를 청취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실패 1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부문에서 이 정책이 실패하면 민간에서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에 견줘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이 35%인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가계소득 증대는 불가능하고 결국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경제 정책까지 좌초할 수도 있다.

과연 실질적인 대책은 없을까?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우선 중요하다. 2년 전 박근혜정부가 임금피크제를 강제할 때 노동조합은 진정 청년 고용을 위해서라면 출연연구기관에서 수행하는 연구사업비의 1%를 인건비로 추가 전환해 연간 750억 원을 마련하고 그것으로 2500명을 고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방안을 포함해 정부가 다각도로 예산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연구기관들도 정부 핑계만 대지 말고 모든 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정부와 연구기관들이 정녕 최선을 다한다면 내 임금을 대폭 깎아서라도 정규직 전환을 위한 재원 마련에 보태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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