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산맥 체계에 관한 연구는 풍수와 전통지리학을 기초로 이를 계승하려는 학계와 서양 지리학의 영향을 받아 지질 및 지형학을 연구하는 학계로 양분돼 발전해왔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서양식 지리학에 밀려 전통지리의 명맥이 사라졌다가 최근 이를 다시 찾고자하는 노력들에 의해 그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산맥 체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이뤄짐에 따라 전통지리적 산맥 체계와 지질 및 지형학의 산맥체계 논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로 지역을 한정한다면, 역사적으로 전통지리가 조선 후기까지 우리의 산맥을 연구하다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서양식 지리학이 이 땅의 주인이 됐고 해방 후 줄곧 서양식 지리학이 교육돼 현재에 이르게 된다. 양자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통지리학은 일본에 의해 우리의 것이 빼앗기고 망각됐다고 본다. 반면, 현재의 지리학계는 그들이 배웠던 서양식 지리가 세계적으로 통용됨으로 당연히 옳고 전통지리는 학문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산객이 활용하는 레저용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논쟁은 예루살렘을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끝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전통지리와 현재의 한국지리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양측의 학문적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고 서로의 학문을 이해해야 좋은 미래를 추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지리의 맥락은 통일신라 후기 도선대사에 의해 풍수지리를 근간으로 시작됐다. 고려시대 한반도의 지세를 수근목간(水根木幹)으로 해 이어져 왔으며 조선시대엔 백두산을 국토의 조종산으로 인식해 고지도가 작성됐다. 연구가 계속되면서 지도의 산과 물의 표시가 섬세해지면서 그 맥락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신경준의 ‘산수고(山水考)’에 의해 우리나라 산천을 파악했고 산경표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통해 한반도 산줄기 체계가 산과 물을 중심으로 확립됐다. 그 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00여 년 명맥이 유지되지 못했다. 최근 전통지리를 계승하고 새로운 과학적 기법과 첨단 장비를 이용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현재 지리학계의 시작은 지질학을 기초로 한 산맥 연구가인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에 의해 시작됐다. 고토는 일찍 유럽에서 유학해 서양지리학을 연구했다. 당시 유럽은 제국주의시대로 식민지 지배 국가의 땅 속의 광물질 채취에 혈안이 돼 지질과 지형학에 관점을 뒀다. 고토를 시작으로 식민지시대 일본과 독일 학자들에 의해 조선의 산맥도가 연구됐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하자원을 일본이 쉽게 가져가는 계기가 됐다. 해방 후 국내 학자들에 의해 한반도의 산맥체계가 많이 연구됐지만 모두 서양지리에 관심을 뒀고 가끔 전통지리의 연구가 있었으나 지리학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필자를 놀라게 한 부분은 전통지리학계와는 달리 연구자에 따라 산맥의 모양이나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전통적 사고에서는 모든 산은 하나로 연결돼 맥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의 동맥과 같이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됐지만 서양지리학적 연구는 산맥과 산맥이 끊어져 있었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단지 지질 및 지형의 형성시기와 내용에 관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양자의 관계는 서로의 장점과 미비점을 보완해 틀림이 아닌 다름의 관점으로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발전시켜야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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