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명예교수

장시조 '져 건너 월앙 바회…'
 

옛사람 이르는 말이 남의 남편의 첩이 되면 몹시 잔밉고도 얄미우며 온갖 간사한 꾀로 환심을 사려고 하는 젊은 첩년은 급살 맞아 죽는다더라. 첩이 대답하기를 아내님 망녕된 말 마시오. 듣자하니 남편 박대하고 첩 심히 시기하시면 늙은 아내님이 먼저 죽는다더라.

처와 첩 사이의 갈등이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아내가 있는 남자의 첩이 되면 첩은 급살 맞아 죽는다고 말하니 남편을 박대하고 첩에게 시샘하면 아내가 먼저 죽는다고 첩이 맞받아치고 있다. 장군 하니 멍군 한다.

당돌하기 짝이 없는 첩의 대꾸에 본처가 한 대 얻어맞은 형국이다. 첩이 본처를 꾸짖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첩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는 듯 가부장제 하에서는 당시 처첩제도는 이렇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으니 이를 어쩌겠는가.

불륜을 목도한 시조도 있다.

재너머 첩집을 갔는데 누추한 작은 초옥에서 서로 멍석을 펼쳐 덮고 엉크러지고 틀어졌구나. 이제는 어리보기 난봉꾼이 되었구나. 두어라 메밀떡에 장고를 말려서 무엇하리오. 여기 메밀떡에 두 장고는 성기를 은유한 것이다.

비록 누추한 집이지만 남편과 첩이 저리 좋아하니 남편의 마음이 첩에게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엔 이런 것이 가부장 제도가 만든 여자의 운명이었으니 무슨 사족을 덧붙이랴.

작첩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그래도 정실 부인밖에 달리 없다는 건실한 시조도 있다.

신헌조의 ‘봉래악부’에 나오는 사설시조다.

첩이 좋다 하나 첩의 폐단을 들어보소. 눈에 본 종계집은 기강이 문란해지고 노리개 기생첩은 무난하지만 중문 안 지방 관아에 매인 관노 신분이니 양반 노릇 하기에 어려우며 양가의 여식 중에서 성이 다른 이를 첩으로 들이는 것은 그중 낫지만 안마루의 신발짝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장옷귀도 떨어질 정도로 외출이 잦다면 그로 인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으니 사대부 가문의 법도가 어그러질 것이 아닌가.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양반가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래도 정실 부인이 제일 나은가 하노라.

당시에 남자들은 여건이 된다면 첩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아무리 첩이 좋다 한들 적첩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있음을 다양한 첩의 행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래도 본처만한 아내가 없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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