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것이 생명을 가지고 어떤 격을 가진 존재라면 스스로 제 발로 서고, 제 머리로 생각하고, 제 가슴으로 느끼며, 제 몸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개인 사람은 민족 안에서 살고 나라의 테두리를 바탕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어떤 종교와 사상체계와 이념체계를 가지고 자기행동의 방향을 설정한다. 사람이 동아리를 지어 사는 한 그것들은 한 사람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를 제한한다. 그것들 속에 살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사람이 제대로 사람의 노릇을 하려면 겨레가 똑바로 서고, 나라가 제대로 할 일을 하며, 이념이나 사상체계가 참에 맞게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겨레가 겨레답고, 나라가 나라다우며, 이념과 사상체계가 끊임없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전개되려면 그것들의 테두리를 깨고 나가는 운동이 항상 전개되어야 한다. 이때 논란에 빠질 수가 있다. 겨레나 나라가 먼저냐? 아니면 개인 사람이 먼저냐 하는 문제다. 그것들이 어떤 것이 되었든 스스로 하는 자율존재요 독립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하나의 초점에 맞추어 진다. 그러니까 스스로 서 있는 겨레나 나라는 곧 스스로 서는 사람을 보장하여 주며, 거꾸로 스스로 서는 사람은 곧 스스로 서는 겨레와 나라를 구성한다. 그것들은 주권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독립을 바라고 해방과 자유를 선언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겨레와 나라와 사람들이 스스로 서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들인가?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남북한이 모두 꼭 같은 처지에 있다고 본다. 분단이라는 어마어마한 한계를 가지고 부자유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겨레라는 말, 나라라는 말을 지극히 좁은 테두리에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다시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국을 휩쓸었던 ‘신탁 반탁’의 논쟁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신탁이든 반탁이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일정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신탁이냐 반탁이냐 하는 것이 스스로 논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때는 신탁이 되든 반탁이 되든 스스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유와 독립이 보장되는 해방의 상태를 만들 수는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였든 두개의 분단된 국가체제로 가든 스스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자유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보면 행방정국 이후에 이루어진 이 분단과 통합의 논의는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하여 이끌어졌다는 점에서 독립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해방된 우리의 조국은 분단되면서 외세의 개입으로 부자유한, 아직은 독립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빠졌다. 그것은 7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지속되는 모순이다. 이 모순 속에서 사람은 매우 부자유한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말과 글과 행동을 제한받으면서 산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동시에 갈라진 겨레나 따로 세워진 나라를 이끄는 정부의 생각과 행동에도 큰 제한을 받게 되었다. 지금 아주 위급하게 돌아가는 사드배치와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전쟁불사를 주장하는 오만한 행동에 우왕좌왕하는 것은 다 스스로 서 있지 못함을 입증하는 일들이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반대하지만, 우선 문재인 정부는 사드배치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독립되지 못한 국방체계에서는 종속된 그 행태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무엇이라고 말하였든 그것은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독립된 국가로 가는 길을 굳게 하려한다면, 과정을 좀 더 솔직하게 하였어야 한다. 그가 주장하였던 대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고, 국회의 논의를 거치고, 시민들에게 솔직한 사정을 알려 설득했어야 한다. 이번 사드추가배치에도 그의 인기는 떨어지지 않을는지 모르나 그는 매우 중요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선거과정에서 주장한 협치를 이루기 위하여 함께 일할 사람들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좀 더 폭넓게 야당에게까지 인재를 초청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과 같은 부족한 점이라고 본다.

어떤 일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 일을 하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 스스로 사드를 배치하고, 우리 스스로 북핵문제에 대응하고, 우리 스스로 대화를 이끌어나간다면 그것은 좋다. 그러나 미국에 눌리거나 북핵에 이끌려서 이리저리 말을 바꾸고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올바른 일은 아니다. 물론 경제로는 상당히 성장하였다고 하지만, 정치와 군사 면에서는 전혀 독자노선을 가지지 못하는 독립되지 못한 체제에 있다. 정부는 이러한 것을 솔직히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면서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통하여 완전히 독립된 나라의 모습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에 있든, 맨자리에 있든 겨레와 나라의 틀을 뛰어넘는 맨사람의 자세가 필요하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맨사람, 어떤 것에 매이지 않는 맨사람의 자리로 갈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대단위의 집단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작은 단위의 성찰활동으로 될 것이다. 사람은, 맨사람은 겨레나 나라나 종교나 이념 따위에 매일 존재가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맨사람, 즉 씨알의 자리에 갈 때 종속체계의 겨레 나라의 모습도 스스로 서는 독립의 자리에 가게 될 것이다. 이번 이 심각한 위기상황은 곧 스스로 자기가 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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