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첫 추석연휴가 돌아왔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더치페이(각자내기) 문화정착과 접대문화 개선 등 투명사회로 가기 위한 긍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높지만 추석 대목을 맞는 상인들과 농축산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선물 상한선을 5만 원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추석을 맞아 선물용 상품을 진열해놓고 있는 상가에는 5만 원짜리 이하가 주로 팔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실속상품들이 팔리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상인들과 농축산업자들은 상한선이 너무 낮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식사, 선물, 경조사비를 3만, 5만, 10만 원으로 상한선을 규정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이와 관련된 산업들의 피해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농축산물 거래 및 외식업 동향’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인 지난해 4분기 농림어업 GDP가 전년 동기 대비 5%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는 지난 설 명절 때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주요 대형마트의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실적이 전년 대비 14.4%가 감소했다. 특히 국내산 농축산물은 25.8%나 감소해 피해가 막심했다. 또한 외식업계와 화훼업계의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을 비롯해 정부의 농축산부처를 중심으로 김영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선물금액과 음식물 제공액을 10만원으로 높이고 경조사비는 기존 10만 원에서 5만원 으로 낮추는 것으로 골자로 한 개정안 등 2건이 이미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 회부돼 있다.

그렇지만 지난 19일 열린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의뢰한 실태조사 결과가 완료되지 않았고 현 규정의 유지를 바라는 국민 여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권익위 조사가 완료되는 오는 11월 이후 논의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추석 전에 혹시 개정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업계 관계자들은 낙심한 표정이 역력하다. 지난 설 명절 때처럼 선물세트 판매량이 크게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눈치다. 개정을 하려면 추석 전에 할 것이지 이를 미룬 것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물론 권익위가 조사를 하고 있으니 결과를 보고 결정하려는 것에도 일리는 있다. 현행 규정을 유지하자는 여론이 높게 나오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한시가 급하다. 이러다가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나서야 개정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개정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좋지만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선 서두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정세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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