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 수필가

기름으로 죽었던 태안 앞바다가 10년 만에 다시 ‘기름진 바다’로 태어났다. 전문가들도 본래 생태로 복원되기까지는 요원하다고 진단했던 태안 앞바다 기름오염사고는 이제 한때의 악몽이고, 교훈이 됐다. ‘태안(泰安)’은 행정구역상 지명만이 아니다. 3면이 바다이기에 바다가 평안해야 태안이다. 죽음의 기로에서 바다는 기적처럼 살아나 다시 태안의 천혜적 경관을 품고, 태안의 선량한 민생들을 품었다. 바다가 없다면 태안은 없다.

태안 앞바다가 갑자기 죽음의 바다로 변한 것은 10년 전이다. 2007년 12월 7일 북풍이 거칠게 몰아치던 이른 아침이었다. 대산석유화학공단으로 들어가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만리포 서북방 5마일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과 충돌하면서 빚어진 사고 때문이다. 충돌 당시 유조선에 실려 있던 1만 900톤의 원유가 그대로 바다에 쏟아졌다. 푸르던 태안 앞바다는 거센 풍랑타고 삽시간에 온통 ‘죽음의 바다’가 됐다.

1995년 세계가 주목했던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사고보다 무려 2.5배나 많은 양의 원유가 쏟아져 태안을 비롯한 서산·홍성·보령·서천·당진 등 충남도내 서해안 6개 시·군 해안선 70여㎞와 해수욕장 15곳, 56개 섬 지역 해안을 모조리 오염시킨 사상 최악의 재난이었다. 그 중에서도 태안 앞바다는 전체가 새까만 원유로 뒤덮였다. 연안에서 각종 어장을 일궈 생업을 삼아오던 어민들은 졸지에 생업을 잃었다.

상심한 어민들은 목숨을 끊는 자학의 몸부림을 쳤다. ‘보상’이란 구실로 얼마간의 생계비를 지원받았지만 삶의 터전을 몽땅 잃은 어민들의 아픔을 상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일부에선 피해 어민들을 선동해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사리가 분명했던 태안군민들의 지혜는 순리적으로 대처했다. ‘태안’이란 지명이 의미하듯, 근본적 해결책은 바다를 살려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날마다 몇 천, 몇 만 명씩 태안을 살리자는 자원봉사자들 손길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설한풍 칼바람이 몰아치는 혹한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기름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로 들어가 새까만 기름띠를 걷어내는 고역을 서슴지 않았다. 또 해안가 바윗돌에 엉겨 붙은 원유덩어리를 닦아내고, 해변에 깔려있는 조약돌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닦아냈다. 전국에서 태안 앞바다에 찾아와 오염된 기름을 닦아내는 데 정성을 쏟아준 자원봉사자들은 공식 집계로만 123만 명에 이르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죽어가던 바다의 생태도 점점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난해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의 현지실사 결과, ‘태안해양국립공원의 보호지역등급, 카테고리2(국립공원)’라는 판정을 받았다. 해양생태계가 사고 전처럼 복원됐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전화위복이란 교훈은 낯설지 않다. 요원하다던 태안반도의 천혜적 자연경관과 아름다운 생태계는 꼭 10년 만에 원형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태안(泰安)이 됐다.

지난 15일 태안군민들은 만리포 백사장에 모여 ‘유류피해 극복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은 오염된 태안을 살리기 위해 전국에서 동참해준 자원봉사자 123만 명에 대한 감사의 자리였고, 군수를 정점으로 한데 뭉쳐 실망과 좌절을 이겨낸 군민들의 성대한 자축장이었다. 대통령까지 참석해 “죽음의 바다가 생명의 바다로 기적처럼 되살아났다”라고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부터 태안군민들은 어제를 교훈삼아 내일의 행복을 찾는 지혜로 똘똘 뭉쳐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단합의 지혜가 중요하다. 힐링(Healing) 시대를 맞아 이제 발전의 기회는 태안으로 왔다. 기름으로 오염됐던 죽음의 바다가 ‘기름진 바다’로 다시 열리던 날 태안은 축복이었다. 뭉치고 단합하면 보람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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