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예술의 정수 '금동대향로' 연구·활용을 고민하다

능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의 연구와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댔다.

신광섭 울산박물관장, 소현숙 원광대학교 교수, 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참석한 이번 자리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굴 상황, 도상의 의미, 역사적 가치와 활용에 관해 깊이 있는 대담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백제금동대향로에 대해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백제 예술의 정수’로 평가했다.

전체적인 형상의 기원은 중국 박산 향로에서 찾을 수 있으나 그 정교함과 완벽한 비례, 백제인의 정신을 담은 다양한 도상(圖像, Icon)은 그 어떤 향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러한 복잡한 형상의 향로는 제작하기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당시 백제인들의 뛰어난 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다.

향로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중국 남북조 향로와의 비교를 통해 성왕 대 제작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도상의 의미에 대해 유불선의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봤으며,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관련성에도 주목했다.

또한, 향후 향로 연구의 진전과 활용을 위해서는 함께 출토된 유물 전반에 대한 공개와 전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 향로 출토의 순간

▲신광섭 울산박물관장= 능사 발굴은 1992년부터 시작돼 현재 12차 조사까지 실시됐다. 향로는 그중 2차 조사에서 확인되었는데, 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1993년 12월 12일 범위를 확장해 조사하던 중 서회랑 북단 건물지 중앙 칸 바닥의 지하 목곽에서 출토됐다. 현장에서 향로의 일부가 노출됐다는 긴급한 연락을 받았다. 영하의 차가운 물속에서 스폰지로 물을 제거하며 향로를 수습했다. 1330년간 묻혀있던 백제 대향로의 찬란한 자태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향로의 제작시기와 제작방법

▲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그 모양이 복잡해 모형을 거푸집의 재료로 감싼 후 거푸집의 손상 없이 모형을 빼내기 어려우므로, 밀납주조법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푸집을 여러 개 사용했을 때 거푸집이 맞닿는 부분에 생기는 분할 선의 흔적이 없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납을 첨가하지 않고 구리와 주석만으로 주조했는데, 납을 첨가하지 않으면 제작이 어려운 반면에, 좋은 강도를 얻을 수 있다. 뚜껑 부분의 산은 밀납 모형을 안쪽에서 밀어 올려 제작했다. 다리쪽에 보면 수리흔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밀납으로 모형을 만들 때 부위를 연결하기 위해 밀랍을 녹여 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 모양이 복잡해 주조가 쉽지 않은 구조인데, 주조결함이 적어 공학적으로도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전에 납동위원소 분석결과에 의거 중국에서 제작됐다는 설이 있었으나, 당시 납동위원소에 대한 분석사례가 적어 발생한 결과였다. 현 납동위원소 분석성과와 함께 공방지에서 제련 및 주조와 관련된 청동덩어리가 출토된 점으로 볼 때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현숙 원광대학교 교수= 향로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능사 창건 해인 567년을 하한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제작 상한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중국의 경우 백제금동대향로와 유사한 구성 요소, 즉 용이 입으로 연화를 문 모습 등은 이미 남제(南齊)의 문인 유회(劉繪. 458~502)의 ‘영박산향로시’에서 거론되고 있으며, 5세기 후반에는 유사한 형태의 향로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향로의 제작시기를 성왕 재위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광섭 관장= 산에 그려진 빗금은 주조 후 조각을 한 것이다.
 

- 향로의 사용

▲박학수 학예연구관= 향로 안쪽에 구멍을 추가로 뚫은 것으로 보아 실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조 후 처음에는 연기가 생각보다 잘 빠지지 않은 것 같다.

▲신광섭 관장= 향로의 모습은 ‘정지동태’이다. 실제 향을 피워보면 향이 올라가지 않고, 향이 밖으로 나와 내려간다. 처음 향로 발견 시 구멍 뒷부분에 그을음이 코팅된 것처럼 두껍게 묻어 있던 것도 이러한 향의 흐름을 증명한다. 제작자가 심산유곡에 연향이 운무처럼 깔리는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닌지? 이는 외리 사지 출토 산수문전의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향로는 백제 최고위층이 사용한 것으로 악귀의 모습 등 고구려 고분벽화의 요소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를 통해 죽은 자를 위한 제사에 사용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소현숙 교수= 중국의 향로는 산 하나하나마다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구멍의 수가 매우 적은 편이다. 중국 화상전에 표현된 행렬도에 보면 향로를 반쯤 열고 가는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는 향로의 연소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 향로의 도상과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신광섭 관장= 한때 향로의 도상에 대해 수미산이다 봉래산이다 논란이 있었다.

이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에 관한 문제로, 현재는 어떤 하나의 종교관을 대변한다기보다, 다양한 백제인의 사상이 함축된 것으로 본다. 다만, 잡아먹고 먹히는 장면이 여러 군데 등장하는데 불교의 사상 안에서 이러한 살생의 장면이 천연덕스럽게 표현된 점은 의문이다.

한편, 다섯 개의 봉우리, 다섯 마리의 새, 다섯 명의 주악신상 등 ‘오’는 백제를 특징짓는 숫자로 볼 수 있다.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굳이 불교와 도교 중 선택하자면, 도교 쪽에 가깝다. 박산이라는 말 자체가 전한-후한시대부터 나오는 신선사상의 배경 중 하나이다. 다만, 향로가 사찰임이 분명한 곳에서 나왔고, 유교에서도 역시 향의 연기를 조상과 통하는 통로로 보고 있으므로, 사상사적으로 도교의 신선사상과 관련이 깊은 것은 분명하지만 불교, 유교와의 관련성도 빼놓을 수 없다.

▲소현숙 교수= 매우 다양한 도상과 모티프가 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향로의 의미와 기능을 도출하고, 나아가 백제인의 사상과 신앙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도상의 혼융 현상이 출현하므로 도상에 대한 이해가 바로 향로 기능의 이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님을 전제로 해야 한다.

- 향로는 왜 그곳에 묻혔을까?

▲소현숙 교수= 불상의 경우 용도를 다하고 우물 속에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 향로의 경우도 생명력을 다해 폐기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단에 싸서 목제 곽에 넣었다는 점만을 보더라도 역시, 백제 멸망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묻힌 것이 아닌 가 판단된다.

▲김태식 기자= 향로의 발견 당시 상태가 폐기할 정도의 상태인지도 중요할 것 같다.

▲박학수 학예연구관= 향로의 상태는 현재의 시점에서 봐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신광섭 관장= 향로와 함께 칠기편, 금속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볼 때 백제멸망 당시 긴급히 은폐 내지, 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 향로의 역사적 가치와 활용

▲신광섭 관장= 동북아시아 최고의 걸작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사상과 관념이 깃들어 있는 완벽한 형상의 조형물로서 ‘백제의 자존심’이라 말할 수 있다.

▲소현숙 교수= 능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는 6세기 전반 백제의 신앙과 사상, 예술과 공예,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와의 물질 및 문화교류는 물론, 당시의 제의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백제 이해의 커다란 창구(窓口)’라 할 수 있다.

▲김태식 기자=능 사는 백제사, 나아가 한국고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견주어 일반 시민에게는 거의 부각되지 못한 것이 실정이다.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이 각종 역사 개설서나 역사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이는 무엇보다 현장과 유물이 괴리된 까닭이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사지 정비계획과 맞물려, 사지의 입체적인 이해를 위한 다양한 시각자료의 보완이 필요하다. 현장에는 향로와 사리감이 출토된 정확한 위치에 대한 정보 제공과 더불어 향로의 경우 출토 양상을 보여주는 목곽 전반에 대한 재현이 필요하다. 더불어 능사에서는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입체적인 출토 양상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가 거의 전무하다. 종합적인 발굴성과를 보여주는 기획이 있어야 하며, 향로가 출토된 목곽, 출토유물 중 심주 일부와 여타의 유물은 전연 공개된 바 없어, 그에 대한 정리와 전문 전시코너의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현재 능사의 좌우에 위치한 나성과 능산리고분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는데, 그 사이에 위치한 능사도 당연히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

<이 기사는 부여군·(재)백제고도문화재단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정리> 부여=김인수 기자 kis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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