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 수필가

 

대전시의 시정(市政) 구호는 ‘시민을 행복하게, 대전을 살맛나게’다. 듣기는 좋지만 막연하다. 결코 시정 구호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구호처럼 시민들을 행복하게, 살맛나게 만들어야 할 대전 시정이 공회전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미 대전에 구축돼 있던 과학기술 연구기관이 줄줄이 외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심각한 현상이다. ‘과학특별시’를 자처하던 인프라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다. 해마다 늘어나는 시민들의 이탈 현상과 함께 시세(市勢)가 위축되고 있다. 미래 대전의 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대전의 상징은 ‘과학도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밝힌 지난 8월 말 기준 자료에 따르면 NST에 등록된 정부, 민간 출연연구기관 중 대전에서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기관이 무려 34곳이나 된다. 반면 대전에 새로 설치 중인 기관은 8곳뿐이다. 전국에 분포된 각종 전문기술연구기관이 모두 54곳인 점을 감안한다면, 대전에 입주했던 과학기술연구 전문기관의 절반 이상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과학기술인력 집적단지로 형성됐던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연구기관들의 이탈 현상이 최근 들어 급증하는 것은 대전 시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전시는 과학도시를 넘어 ‘4차 산업혁명 특별시’로 거듭나겠다고 소리치고 있다. 시민들은 행복하고, 살맛나도록 하겠다는 시정만 믿고 있다. 대전은 전국 최초의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일찍부터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대전은 전국 제일의 상징적 과학도시가 됐다. 따라서 시정 비중도 당연히 과학도시답게 상징성을 지키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우선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미 구축된 기존의 인프라마저 타 지역에 빼앗기고 있다. 그만큼 대전 시정이 무관심했거나, 아니면 부족했다는 의미다. 시민들의 우려처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무사안일’의 시정이 과학도시의 동력까지 약화시킨 꼴이다.

대전시의 가장 큰 자산은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 집적된 고급 두뇌, 기술연구인력들이다.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다. 이들이 떠나지 않고 대전에 머물 수 있을 때 대전의 시세도 발전할 수 있고,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고급 인력들이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이 바로 대전시의 행정력이어야 한다. 행정력 뒷받침은 과학도시의 위상과 또 과학기술도시로 더욱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 지금 전국 자치단체들은 과학기술인력과 전문기술연구기관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로 인해 정부나 대기업들이 출연한 연구기관의 대전 이탈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커지고 있다.

세제 혜택, 토지 사용 지원, 연구비 지원 등 직·간접적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대전시는 기왕에 집적됐던 과학기술인력과 전문연구기관의 타 지역 유출 방지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과학도시’로 상징되는 대전의 위상은 자칫 타 지역들의 후미(後尾) 서열로 밀려날 우려마저 크다. 지방선거가 불과 8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무엇을 내놓고 심판 받을 것인지, 대전시장은 시정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고가(高架) 방식이든, 궤도(軌道, Tram) 방식이든 대전도시철도 2호선은 말로만 달린 지 벌써 몇 년째인가? 심지어 시범구간 우선 건설 약속마저도 오리무중인 채 2호선은 아예 행방조차 묘연한 상황이다.

대전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 변화하는 주변 여건을 뻔히 보면서도 시정은 대책이 없다. 시민들을 행복하고 살맛나게 하려는 시정 의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6월 말 기준 대전 인구는 150만 7597명으로, 2013년 말 153만 2811명보다 2만 5214명이나 감소했다. 기존의 과학기술 연구기관도 줄어들고, 시민들도 계속 대전을 떠나면 시세 위축은 뻔하다. 대책 없는 시정은 공회전만 하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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