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섭(배재대 비서팀장·전 대전일보 기자)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기 한창이다. 황금물결로 출렁이던 들녘도 어느덧 추수가 거의 끝나간다. 점점 깊어가고 있는 가을풍경이 일면 풍요롭게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도 짙어진다. 지난 주말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께 가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활짝 핀 노란 국화 화분을 갖고 갔다. 국화 가지 하나를 꺾어 누워계신 어머니 코에 대어주니 환하게 웃으시면서 ‘참 좋다~’ 하신다. 옆 침대에 계신 어르신이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기에 같은 층의 모든 분께 나눠 드렸다. 풍성했던 화분이 어느새 몽당연필처럼 변해버렸지만 실내에 가득 퍼진 국화향기와 모처럼 소녀로 돌아가 행복해하시는 모습들이 오랫동안 남았다.

어머니께서는 병원생활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끔 푸념하시듯 말씀하신다. 내가 왜 이렇고 있다니? 나를 좀 어떻게 해줄 방법 좀 찾아 보거라며 평생 치열한 생활 속에서 갖고 계셨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찾고 싶어 하신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듯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몹시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식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어머니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품위를 지키는 삶에 대해 곱씹어보면서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다고 마음먹을 뿐이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친인척들과 만나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가 연봉에 대한 물음이 있었는데, 최근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양극화 문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2015년 기준 상위 0.1%인 1만 7000여 명의 월평균 소득이 5458만 원으로 중간에 위치한 50% 구간(중위소득)의 근로자 평균 192만 원의 28.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하위 30.2%인 523만여 명의 평균연봉은 1400여 만 원에 그쳐 근로소득세가 ‘0원’이라고 하니 매년 연말정산 때마다 세금이 너무 많이 공제된다고 푸념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졌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자기 연봉에 만족하는 월급쟁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과 함께 받는 월급에 걸맞게 직장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되짚어 봤다. 최소한의 월급 값도 못하면서 각종 불평불만이나 쏟아내는 천덕꾸러기 직장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는 흔히 직장동료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불평을 안주거리로 늘어놓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것이 직장생활의 맛 중에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제몫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불평만 늘어놓는 모습을 볼 때면 추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격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본인이 마음에 드는 직장으로 하루빨리 옮기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품위는 스스로 가꾸고 지켜 나가야 하는 도덕적 기준이자 자신만의 가치다. 보통 상류층이라 함은 돈보다는 가치를 중시하고 지위보다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품위를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와 연봉에 걸맞게 주변에 대한 배려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다. 깊어가는 가을밤! 익을수록 고개숙여가는 벼이삭처럼 좀 더 품위를 지켜가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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