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기부금 유용 의혹에 ‘기부 포비아’가 점차 확산되는 모양새다. 기부금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기부단체들은 가뜩이나 인색한 기부 문화가 더 얼어붙진 않을까 속앓이만 하고 있다.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 씨는 자신의 딸의 이름을 내세우며 수억 원의 기부금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며 후원금을 모금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십시일반 적은 돈이지만 이들 가족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정말 좋은 미담이 될 뻔 했던 사례는 그가 살인을 저지르며 반전을 맞았다. 그가 자전거로 일주하고 온라인을 통해 모아온 후원금은 정작 딸의 병을 치료하는 데가 아닌 이 씨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쓰였다. 이를 접한 사람들은 “내가 기부한 돈이 엉뚱한 일에 쓰여졌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난다”, “기부를 했더니 남의 배만 불렸다”며 분노했고 결국 이 사건 하나가 기부문화에 대한 회의감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부금 유용과 관련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새희망씨앗’이라는 단체가 결손아동을 위한 기부금을 횡령해 사적으로 쓴 사실이 밝혀지며 사회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 단체는 2014년부터 최근까지 128억 원의 기부금을 거뒀지만 실제 불우아동에겐 고작 2억 원을 지원했다. 이 사건이 채 잊히기도 전에 어금니 아빠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기부에 나서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게 돼버린 거다. 매달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단체를 통해 꾸준한 기부를 해온 시민 김 모(33) 씨는 “내가 기부한 돈이 정말 쓰여 질 곳에 쓰이는 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어금니 아빠의 사례를 마주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졌다”며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기부단체들도 악재에 악재가 겹치며 기부금이 행여 줄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기부단체엔 최근 자신의 후원금이 어디로 쓰이는 지를 물어오는 후원자들로 북새통이다. 지역 한 기부단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 달간 이 단체로 걸려온 문의 중 상당수가 기부금이 어디로 쓰여지는 지 묻는 전화들이었다. 이 기부단체 관계자는 “기부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묻는 후원자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 매년 모금이 어려운 상황인데 기부가 줄면 그만큼 혜택을 받는 소외계층이 줄어들게 된다. 제대로 후원하는 단체들까지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진 게 실감난다”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은 “돌이켜보면 기부에 나서는 사람들은 액수에 상관없이 본인의 돈이 정말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쓰인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기부 문화에 불어닥친 악재들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꼴이 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이제라도 기부 문화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현수 국제공인 모금전문가는 “올바른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선 우선 내가 낸 기부가 존중받고 쓰인 금액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기부자 권리 인식이 강화돼야 한다”며 “기관도 자신이 모금으로 받는 혜택에 대한 올바른 책임감을 가지려는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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