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 내포취재본부장

 

‘이따위 짓을 하다니, 정신이 나갔어’ ‘국회의원한테 그따위로 질문하래’ ‘체통, 당신이나 지켜’ ‘입 다물어’ ‘완장질 하지 마’ ‘막가파 대감이네’ ‘시정잡배보다 못한 처신하고 있네’ ‘사퇴하세요’….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돼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올해 국정감사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차갑다. 많은 국민들은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새 정부 출범 이후 빠르게 바뀌고 있는 국정에 맞춰 국회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막말과 고성이 난무하고 인신공격성 발언이 판을 쳤으며 여야 의원들의 감정 섞인 말싸움으로 파행되기 일쑤였다. 피감기관의 장을 마치 피의자 심문하듯 반말과 삿대질로 윽박지르고 추궁하는 모습도 사라지지 않았다. 권위적인 자세나 위세를 과시하는 고압적인 태도 등 구태한 행태가 반복됐고 일부 의원들의 치적 홍보나 지역구를 챙기기 위한 읍소도 국정감사 단골메뉴다. 마치 예전에 녹화된 TV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는 ‘재방송 국감’이었다. 그러니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이 올해 국감 중간 성적으로 낙제점을 겨우 면한 C- 학점을 매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정감사는 입법기관이자 국민 대의기관인 국회가 행정·사법을 통틀어 국정 전반에 대해 감시 비판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권한이다. 부패와 관계기관의 업무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제4공화국 때 없어지기는 했지만 1987년 제6공화국 때 부활돼 올해로 30년이 됐다. 국정감사는 올바른 정책중심의 감사를 통해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고 낭비되는 예산을 막는 귀중한 기회이다. 국회의 위상을 찾고 국회의원들의 자질과 능력을 알릴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린다. 그런데도 30년째 변화하지 않는 ‘판박이 국감’이 진행되고 있으니 국민들의 실망감과 자괴감은 깊어가고 있다.

9년여 만에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후 처음 실시되는 올해 국감은 국민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의 성숙된 민주 의식을 바탕으로 국정을 농단한 정권을 퇴진시킨 촛불 시위 1년이 되는 시점에 열린다는 점도 있지만 보기 드물게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국정 모두를 감사한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와 달리 여야가 서로 뒤바뀐 상황이어서 더욱 그랬다. 국민들은 지난 정부나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고 여야 간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합리적인 정책대안이 나오길 기다렸다. 서로를 물어뜯고 흠집 내는 정쟁보다는 팍팍해진 국민들의 삶을 보듬어 주는 국회의 모습을 바랐다. 그럼에도 여야는 국민들의 여망을 무참히 저버린 채 국감 초기부터 ‘적폐청산’과 ‘정책무능’을 화두로 삼아 정책 국감이 아닌 정쟁 국감에 몰입했다. 여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적폐 청산’에 초점을 맞춰 공세를 벌이고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무능을 비롯한 정책 실패를 비판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원조 적폐’를 부각시켜 맞불을 놓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프레임으로 국감에 임했으니 정부 정책을 감시 비판하고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챙기는 정책 국감, 민생 국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파탄 난 민생과 북한 핵 등으로 어느 때보다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여야는 그저 밥그릇 싸움이나 상대 진영 헐뜯기, 깎아 내리기에 혈안이니 이런 모습들이 국민들의 눈에 곱게 비칠 리 만무하다.

이달 말 국정감사가 끝나면 곧바로 각 자치단체 별로 지방의회의 행정사무감사가 이어진다. 대전시의회와 충남도의회는 다음 달 7일부터 시정과 교육행정 전반에 걸쳐 행정사무감사를 벌인다. 각 기초단체들도 기초의회의 행정사무감사를 받아야 한다. 내년 6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지방의회의 마지막 행정사무감사이다. 지역민들은 대체적으로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집행부의 선심성 행정과 잘못된 정책을 매의 눈으로 감시 견제하기보다는 정당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어 거수기 노릇이나 물타기, 눈감아주기 등의 구악과 적패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번 행정사무감사를 심판대로 여기고 있다. 마지막 행정사무감사에 조차 구악과 적폐가 계속된다면 이제는 준엄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생각이다. 당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민심을 보듬고 지역 발전을 위한 진정성 있는 감사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혹시나’ 기대했다 ‘역시나’로 끝나는 국정감사를 반면교사 삼아 구악과 적폐 청산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지역민들은 고대하고 있다.

이석호<내포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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