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작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19세기 후반 일본은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통일국가를 이뤄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했다. 그러나 조선은 잠을 자고 있었다. 일본이 유럽과 미국에 눈을 돌려 무섭게 일어나고 있는데 조선은 국제정세를 바로 바라보는 혜안을 갖기는커녕 외척세력과 당쟁 속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총이란 신무기를 개발해 중국을 치겠다며 길을 열어달라던 일본에게 7년 동안 우리 국토는 쑥대밭이 됐다. 국제정세에 어둡던 조선은 일본에 생각이 다른 두 세력이 추천한 사신을 파견했지만 일본을 아직도 ‘왜구’로만 보기로 결론 내리면서 가볍게 여겼다. 무능한 선조는 사색당쟁에 휘말린 채 분열된 국론을 수습하지 못하다 한양을 내주고 의주로 파천하는 치욕을 당했다.

그런 수모는 병자호란 때도 되풀이됐다. 조선은 명과 청 세력이 교체되는 과정을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했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다툼 속에 인조는 결국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한다. 급변해 가는 국제정세에 힘의 향방이 달라지고 있는데도 조선은 꽁꽁 갇힌 채 안에서만 피터지게 싸우다 치욕의 역사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바라보면 또다시 우리 역사가 잘못된 전철을 밟는 것만 같아 가슴이 섬뜩하다. 역사는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이란 말이 실감난다. 부국강병 정책을 펴면서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해 위기에 대처해야 함에도 당쟁만 일삼다가 나라를 송두리째 잃는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한 우리 민족이다. 필자는 지금 심각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깨닫지 못한 채 그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연개소문 아들들의 싸움으로 대륙을 향해 포효했던 고구려의 기상이 무너졌다. 나당이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분열하다가 결국 대륙을 송두리째 내주는 패망의 역사를 자초했지 않은가! 고려가 원나라에 짓밟혔고, 무신 집권으로 이전투구하다가 왕권이 약해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은 것도 그렇다.

조선시대, 분열의 역사는 최고조에 달한다. 건국 초 태종이 다져놓은 절대왕권이 붕괴되고, 500년 내내 외척의 대두와 당파 싸움에 눈이 어둔 조선이었다. 동학혁명이란 절호의 개혁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청과 일본 세력을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다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외세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위급한 상황에도 강대국에 기대는 기회주의자들이 판쳤고, 종국에 가선 국토를 내주는 치욕의 역사 속으로 함몰되고 말았다.

우리 주변 강대국들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시진핑의 중국이 무섭게 패권주의를 부르짖으며 팽창하고 있다. 일본 아베 정권도 북핵 개발에 긴장하면서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미국 트럼프는 가늠할 수 없는 정책의 혼선을 빚고 있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음흉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 이런 판국에 북한은 핵실험에 미사일 발사라는 최대의 악수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짓이다. 이런 어릿광대짓이 어느날 갑자기 외세를 끌어들이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폐청산에만 혈안이 돼 보복정치를 하고 있다. 지금은 국제정세를 주시하면서 미래지향적 정책을 제시해야 할 때다. 과거에 갇힌 채 이명박·박근혜 정부 먼지 털기에 골몰하는 현 정권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불안하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장기화와 함께 4대강 사업을 들쑤시고 있다. 또 언제까지 세월호에 매달려 노란 리본을 달고 있을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적폐청산을 한다며 KBS·MBC 노조의 총파업도 장기화되고 있다.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국민들은 지금 대통령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를 원한다.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 속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고, 북한에게 무모한 핵개발이 또다시 외세를 끌어들이는 짓임을 인식시켜줘야 한다. 분열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고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에 얽매어 분열을 일삼았던 역사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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