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매우 영국적인’이란 제목으로 대전시립합창단 제135회 정기연주회가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통상 클래식음악으로 언급되는 작곡가들과 작품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출신과 그들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영국은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전성기를 이뤘고 19세기 후반기에 다시 영국음악의 부흥을 통해 서양사에 족적을 남겼다.

무엇이 매우 영국적인에 해당되는가. 일단 레퍼토리에 등장한 작곡가들이 모두 영국음악가였고 전반부에 영국 종교음악, 후반부에 영국 세속음악이 등장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영국작곡가들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그 자체가 꼭 영국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영국적이라는 말은 음악적인 특성에서 드러난다. 르네상스 시기, 음악이 복잡하게 선적으로 얽혀있어 쉽게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었던 대륙의 음악양식과 달리 영국은 돌림노래를 포함해 화성적으로 귀에 듣기 좋은 음향으로 호소력 있는 음악을 만들었다. 또 헨델이 영국으로 건너와 메시아와 같은 영국식 오라토리오를 촉발시키며 영국은 지속적으로 합창음악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이 생긴 아마추어 합창단을 포함해 영국음악에서 합창이 차지하는 위상은 다른 나라보다 그 역사가 깊고 넓다.

그렇기에 대전시립합창단이 매우 영국적인 음악을 선보인 건 새로운 도전이자 합창단으로서는 시기적절한 시도다. 작품마다 자리와 인원 배치를 조절해 최적화된 음향을 이끌어냈고 종교음악에서 보여준 경건한 가사 표현력은 매우 경건하게 다가왔다. 특히 토마스 탈리스의 8개 합창단이 40성부 아카펠라로 부르는 ‘당신 외에는 소망이 없고’는 복잡한 대위법으로 얽힌 작품으로 대전예당 아트홀 무대와 객석을 빙둘러 8그룹이 서는 장관을 연출했다. 합창단원과 톨 지휘자에겐 도전이었고 관객에게도 대위법의 진수를 맛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단지 16세기 작곡기법의 근간인 선적 대위법은 대전시립합창단에게도 기교적인 어려움을 수반했고 원숙한 음향을 만들어내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워줬다. 또 지나치게 절제된 음색이다 보니 아무리 아카펠라 소리라 하더라도 가사의 특성에 따라 보다 풍성한 베이스와 강렬한 울림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후반부 영국 마드리갈에서도 밝은 영국음악 특유의 경쾌함이 잘 표현됐다. 인상적인 작품은 합창과 재즈의 결합에서 나왔다. 아카펠라 합창과 재즈피아니스트 조영훈, 베이스 윤철원의 콜라보레이션은 색다르면서도 의외로 조화로웠다. 클래식 음악에 내재된 부드러움 위에 울린 재즈의 분위기는 영국합창음악과 잘 어울렸고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조합이 오히려 합창의 맑은 음색을 돋보이는 역할을 했다. 이질적인 요소가 합쳐 새로운 음악으로 창조된 완전히 다른 음악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음악회는 대전시립합창단에게 신선한 도전이었지만 관객 역시 참신한 경험과 낯선 장르로의 탐색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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