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지난 10월 말에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3구간을 다녀왔다. 젊은 시절 울진 불영계곡을 여행한 이후,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을 30년도 넘어서 마음먹고 3주 전에 금강소나무 숲길 3구간을 미리 인터넷 예약했다.(금강소나무 보호를 위해서 하루에 입산시키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다.) 등산하기 하루 전날 금강소나무 숲길 안내소에서 내일 아침 8시 40분까지 도착할 주소를 친절히 안내해주는 메시지가 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주소지로 출발했다. 그런데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도 들어가도 내비게이션이 계속가기를 안내하고 있었다. 길이 이차선 길에서 일차선길로 바뀌어 차들끼리 교행하기 어려운 길로 안내를 할 때, 동행한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돌아가서 다시 찾아야 한다고들 한마디씩 하고 있는 순간에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금강송팬션)과 운동장이 나타나며 관광버스와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나도 반가웠다. 정말로 오지 중 오지였다. 신청자들이 일찍 도착한 관계로 8시 30분에 3구간을 숲 해설가와 함께 출발했다. 3구간은 소광2리-저진터재-너삼밭-화전민터-군락지초소-오백년 소나무를 보고 되돌아오는 16㎞가 되는 등산길이다.

나는 자상한 숲 해설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됐다. 먼저 금강 소나무 숲길은 옛날 십이령 길을 힐링 숲길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울진, 죽변등 바닷가에서 나는 소금과 어물 그리고 미역 등을 바지게에 지고 십이령을 넘어 봉화, 영주, 안동으로 가져다 팔고 그곳에서 논과 밭의 곡식과 포목 등을 사가지고 되돌아가는 길, 작가 김영주선생님의 ‘객주’의 배경이 된 길이다. 옛날 보부상들의 지혜가 십이령 길에서도 나타난다. 십이령길은 산골짜기의 개천을 끼고 이어져 갔다. 이 골짜기 끝에서 재를 넘어 옆 골짜기를 끼고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는 가장 힘들이지 않고 가는 길을 찾기 위한 오랜 경험으로 완성된 길이었다. 그리고 개천을 지나는 좀 넓은 터에는 더러, 더러 소나무도 갈참나무 류도 아닌 낙엽송이 자라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숲 해설가 선생님이 설명해 줬다. 1968년 삼척무장공비 사건 이후로 화전민들을 모두 생활지에서 도시로 이주하여 살도록 하였는데 그들이 이전에 농사짓던 터에 계속 농사를 지으려하니 국가에서 속성수인 낙엽송을 심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하였다는 가슴 아픈 과거가 그 숲속에 있었다.

우리나라 산에 가장 많은 나무는 소나무이다. 그런데 그 소나무에 대해서 그동안 너무나도 무지함을 알게 되었다. 소나무 잎이 두 개씩 묶어 나는 것이 있고 세 개씩 묶어 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모두 두 개씩 묶어 나는 육송이다. 세 개씩 나는 것은 리기다 소나무나 다른 나라 소나무다.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해송, 적송 하는 것은 편의상 바닷가에서 자라면 해송, 나무가 붉은 기를 띠면 적송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금강송은 금강산에서 경북 울진지방까지 자라는 소나무로 곧게 15m 이상 자라는 소나무를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소나무 수령은 소나무의 옆가지가 하늘을 보고 있으면 100년 이하이고 옆가지가 땅과 평행을 이루면 대략 백년에서 이백년 사이 그리고 옆가지가 땅 쪽을 바라보면 이백년 이상 된 나무라고 한다.

금강소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소나무 숲속에서 단풍들은 자작나무, 도토리나무, 단풍나무를 보니 새로운 모습이었다. 초록색 바탕에 노란색, 빨간색, 갈색들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그리고 마침 불어오는 소슬바람에 이 가을이 가물어서인지 낙엽이 낙엽비가 돼서 마구 흩날리는 것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10m 이상 곧게 자란 금강송의 기상을 보면서 소나무가 나무 중에 가장 품위가 있고 고결한 나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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