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 수필가

 

권선택 대전시장이 임기 7개월을 남겨놓고 시장직을 상실했다. 이유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상고심까지 거치면서 3년이 훨씬 넘도록 검토된 사법부 판단이기에 두말의 여지는 없다. 권 전 시장도 언론을 통해 “대승적 차원에서 사법부 판단에 승복한다”라고 밝혔다. 개인의 불행을 넘어 대전시민 모두의 불행이다. 권 전 시장은 임기 초부터 시작된 불법선거 송사(訟事)에 매달려 재임기간 내내 좌불안석, 노심초사의 세월을 보내느라 시장으로서의 시정 업적도 별로 남겨놓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법부의 시간 끌기 재판 결과는 결국 대전 발전에 장애요인이 됐고, 시민들의 혈세 손실을 키웠으며, 불법 당선자를 거의 임기까지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준 방편이 됐다. 또 각종 선거 입지자들에게 불법을 해서라도 당선만 되면 임기까지 거의 끌고 갈수 있다는 요행심리만 조장한 결과도 낳았다.

막상 시장을 잃은 대전시민들의 감정은 착잡하다. 차기 지방선거를 불과 7개월 앞두고 여당 출신 광역단체장을 낙마시킨 것은, 사법부가 3권을 장악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명분에 동조하기 위한 모종의 함수관계 여론도 무성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내세워 정강(政綱) 이념이 다른 전 정권 주요 보직자 및 정적들에 대한 광범위한 숙정(肅正) 작업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국민정서 역류 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된 표적이 바로 사법부에 계류 중인 권 전 시장 쪽으로 이동됐을 것이란 정치적 산술도 회자된다.

‘적폐청산’ 칼날을 더욱 강하게 합리화시키기 위해 권 전 시장이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의구심들이 다분하다. 물론 권 전 시장에 대한 변명은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포럼’을 명분으로 선거 준비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특별회비를 걷어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 포럼 활동까지는 인정할 수 있으나, 포럼 회원들에게 돈을 거둬 선거 목적으로 사용한 데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판시한 것은 정확하다. 그러나 상고심까지 거치며 장기간 끌어오는 추이로 봐서 ‘무죄’까지도 가능하리라는 시민들의 기대는 ‘적폐청산’이란 광풍의 표적이 되리라 생각지 않았다.

결국 음양(陰陽)의 모든 피해는 대전시민들의 몫이 됐다. 산적한 주요 현안들이 무산되거나 새 시장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6월까지 지연되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우선 시민생활 편익과 대전 시세(市勢) 발전에 직결되는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사업이 오리무중이 됐다. 이 사업은 권 전 시장의 대표공약이었다. 대덕구과 유성구에 시범구간만이라도 먼저 건설해 도시철도 교통 소외지역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공약마저도 공약(空約)이 됐다. 권 전 시장 재임기간 ‘지하’, ‘고가’, ‘트램’ 등 건설 방식에만 매달려 이를 두고 야기된 찬반 논란으로 허송세월을 했다. 결국은 차기 지방선거 때 시장 후보들의 ‘표심 흥정용’으로 이 사안이 재등장할 판이다. 도시철도 2호선 건설은 시 자체 예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관련 중앙부처와 협력관계를 이을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또 요즘 시민단체들의 찬반시비 선동에 정당들까지 가담해 시끄러워진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도 멈추게 됐다. 공원 개발을 명분으로 권 전 시장이 민간자본을 투입하려 했던 사업이었다. 갑천호수공원 친수구역 신도시 개발사업도 안갯속으로 묻히게 됐다. 10여 년을 끌어오며 시행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의혹과 말썽이 무성했던 유성복합터미널 건설 사업도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졌다. 이 밖에도 사이언스콤플렉스, 현대아울렛, 국방산업단지 조성 등 대전 시세 발전에 큰 몫을 하게 될 대규모 사업들이 줄줄이 멈춰 섰다. 대전시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됐다. 시민들의 투표정신이 중요하다. 보수세력은 적극성이 없어 문제고, 진보세력은 적극성이 지나쳐 문제다. 결국 모든 손해는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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