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세종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 경감

늦은 저녁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역린’이란 영화를 다시 보았다. 정조의 암살을 둘러싸고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 24시간을 긴장감 있게 표현한 영화다. 개봉 당시 이미 본 영화이기에 처음 볼 때보다 긴장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정조의 상책 역을 맡은 정재영의 명대사는 다시 들어도 큰 울림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에 등장한다는 이 말을 요즘 표현으로 요약하자면 기본에 충실하자는 의미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어렵고 또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기본을 무시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반복되는 크레인사고, 화재로 인한 인명손실 등 소위 人災라고 표현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기본이다. 사건사고와 연관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기본에 충실했는데도 그런 일들이 발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좋은 게 좋다고 넘기거나 설마 하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조차 망각하고 살고 있지 않은지 우려스럽다.

실제로 우리가 겪었던 수많은 사건사고들의 원인을 따져보면 기본을 무시한 데서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고준희 양 사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부모로서 기본에 충실했다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그 종류나 경중을 떠나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장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무너질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이치는 정치, 경제, 스포츠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통해 맺어지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튼튼한 운동선수가 큰 경기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며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고, 공부를 할 때도 기본이 있어야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부, 부모와 자식, 이웃과 친구, 상사와 동료 사이에도 서로가 기본에 충실한다면 조그만 갈등도 자리잡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뭔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어려움에 닥쳤을 때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작심삼일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술년에는 우리 모두가 기본에 충실해 갈등과 사건사고 없는 평온한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