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섭 경제·문화부 기자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예술로만 평가받고 싶은데 세상이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많다. 현실의 생계 문제와 맞물려 사회로는 경제, 정치, 행정편의주의에 사로잡힌 문화예술 세계에서의 순수성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거다. 이들 앞에서 문제를 듣고 있노라면 대화의 끝엔 ‘그래도 희망이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늘 하소연을 듣다 끝이 나곤 한다. 여느 해보다 말도 많고 탈 많았던 2017년의 질곡을 넘어 새해 첫 태양이 밝아왔지만 맘 놓고 관객과 마주하며 신명난 무대 한 번 만드는 게,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예술적 역량을 가감 없이 발휘해보는 게 하고 싶은 일의 전부라는 이들의 작은 소망이 올해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정말 대전에서 문화예술로 먹고 산다는 건 과욕인걸까.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지역 문화예술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 현장의 사람들은 지역이 가진 현장 풍토에 대한 걱정과 함께 쓴소리 속, 대전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도 함께 담아낸다. 이들이 지적하는 한결같은 질문은 ‘문제를 아는데 왜 바뀌지 않을까?’라는 거다. 단체도 기관도, 개인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를 개선하려는 사람은 없고 현장에선 책임회피, 모르쇠로 일관만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적하는 사람들만 많고 수용하는 사람은 없는 셈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의식도 그만큼 함께 성장해왔는지 곱씹어보면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저마다 개선하자, 바꾸자며 아우성치지만 오직 구호에만 그칠 뿐 무엇이 변했다고 웃으며 말하는 문화예술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변화를 위한 행동과 함께 또하나 변해야만 하는 게 있다. 하나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과정보단 무대 위에서 펼쳐진 결과를 중시하는 대중들의 의식이다. 지역 공연장을 돌아보면 제 값을 주고 표를 팔았다는 관계자들을 만나기 힘들다. 객석 점유율을 높여 지원금 한 푼이라도 더 받기위해 할인, 무료 티켓을 과다하게 내어준 덕에 수익은 급전직하했고 지역에서 지원금 없이도 충분한 자생력을 바탕으로 운영중인 공연예술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공연 입장권에서부터 아직 우리나라는 ‘초대권’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거다. 그 자체로 문화예술을 떠받치는 일반 대중들의 조금은 더 나아진 문화예술의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외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타성에 젖은 문화예술인들의 혹독한 자기반성도 필요하다. 타자에 기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이제 스스로 해결에 나서야 할 때다. 속으로만 고심하고 고뇌할 게 아니라 문화예술의 겉과 속에 켜켜이 쌓여온 지난한 숙제들을 모두 꺼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만 발전과 쇠퇴의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외쳐온 자생력은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고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 때 기대할 수 있다.

‘올해는 더 낫겠지’,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연말엔 웃을 수 있을거야’. 해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되풀이하는 고민은 문화예술인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건 수많은 난제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은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일 거다. 그 힘을 기대하기에 오늘도 일상에 지친 이들은 어김없이 문화예술 현장을 찾는다. 대전의 문화예술이 더 건강하고 더 다양하게 성장해야만 하는 이유다. 

결국 모든 건 스스로 가진 문제를 인정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허물과 모자람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걸 인정해야 비로소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되는 법이다. 더 이상 책임 전가와 회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미 문화로 먹고 사는 시대에까지 접어들었다. 2018년 새해엔 우리 지역 문화예술도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문화를 생산하는 이들의 현실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고 달라져있는 모습을 마주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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