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학교 교수

 

일본 전국시대가 한창이던 1547년, 오다(織田) 측은 이마가와(今川)와 동맹을 맺은 오카자키(岡岐)를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이때 오카자키 성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부친은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이마가와 측에 원군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어린 이에야스는 볼모가 되어 이와가마 측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도착한 곳은 이와가마 성이 아니었다. 그와 적대 관계에 있던 오다 성에 넘겨진 것이다. 인질로 가는 도중 계모 집안에 의해 오다 측에 팔려가는 농락(籠絡)을 당했다. 이에야스의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워진 순간이다. 소식을 들은 이에야스 생모 오다이(於大)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아들의 구명을 위해 오다가(織田家) 후계자로 알려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찾아 간 것이다. 이에야스가 세 살 때 이혼당한 오다이는 당시에 오다 가문의 무사에게 재가(再嫁)하여 전 남편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때였다. 노부가나는 오다이에게 “무슨 선물을 가져왔냐?”고 물었다. 오다이 대답은 궁색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가신(家臣)의 것은 무엇이던지 다이묘(大名)의 것이던 시대였다. 그녀가 말할 수 있는 답은 단 한 가지 바로 “간절한 어미의 마음, 그것 뿐”이었다. 오다이의 마음 선물 덕분인지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의 구명에 앞장섰다. 이에야스는 6세, 노부나가는 14세 때의 일이다(소설 대망 참조).

오다이와 노부나가가 주고받은 선물은 아주 특별했다. 만약 오다이가 ‘어미의 마음’이 아니라 가보(家寶)와 같은 특별한 물건을 내 놓았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했을지 모른다. 그녀는 자기가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받을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관계를 물건이 아닌 정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아들과 노부나가는 수십 년 동안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것은 서로에게 가치 있는 것이었다.

반면 아들의 구명을 위해 ‘그녀의 마음’을 선물했기 때문에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선물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것, 즉 대가성을 바란다면 그것은 뇌물이라는 것이다. 또 선물하는 마음에는 이미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선물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선물이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교환의 시작이고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것이라면 선물이 아니라 기부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선물은 줬다는 것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선물을 교환이나 기부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주고받는 동안 일정한 관계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선물의 유용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다이의 경우처럼 ‘아무런 물건 없이 마음만으로 선물하는 것이 충분한가?’라는 것에 의문이 든다. 성경에는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라고 말한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 돈)가 최고’라는 말도 흔히 쓰인다. 최근에 부정청탁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선물 고르기가 녹록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계란 한 꾸러미도 귀한 선물로 취급되었던 때가 있었지만 물자가 풍족해진 요즘은 어떤 것을 선물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것이다. 마음만으로 선물을 대신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선물은 상대방에게 전하는 인사나 기념으로 주고받는 물품이다. 거기에 마음의 정표이자 상징을 담은 것이다. 주어서 기쁘고 받아서 즐거워야 선물다운 선물이다. 따라서 단순히 마음만 전하거나 물건을 건네는 행위가 아니다. 작은 징표라도 상대방에게 귀한 물품이 되고 받은 사람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야 좋은 선물이 된다. 그런 선물은 주고받는 동안 우호적 관계를 지속시키기 때문에 그 가치는 논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 진정한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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