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은 만년고 교사

 

카톡! [○○ 신입사원 합격 안내문] “선생님, 합격했어요!” T.T

혜진이는 5년 전 가르쳤던 고등학교 제자이다. 1학년 때에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그냥 장난기 많은 학생인줄 알았는데, 2학년 때에는 덜컥 반장을 하고 성적도 꽤 상위권으로 치고 올랐다. 3학년 때는 학교를 옮기게 됐는데 지방국립대 합격했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 후로는 편입해서 공대생이 됐다고 들었다.

재작년인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왁자지껄하다. “선생님,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혜진이 패거리이다. 같은 학교에 진학한 고등학교 출신들이 모였는데, 내 이야기가 나와서 전화했단다. 그리고, 그 후로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취업 준비로 많이 힘들다고 전화가 왔길래 위로해줬다. 요즘 취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힘을 실어주려 애썼지만, 말로 얼마나 전달이 되었을까. 삼계탕이라도 사줄 터이니 나오라니까, 결과 나오면 좋은 소식 들고 연락하겠단다.

그리고 한 달 뒤 정말, 합격 소식이 온 것이다. 정말 감격스럽고 신기했다. 대기업이라 월급도 높은 곳이라 하고 이제 선생님 가전제품 살 때 지인할인 해줄 수 있다며 큰소리 떵떵 친다.

그리고 정말 또 다른 제자 가람이와 함께 점심시간을 맞춰 찾아왔다. 추운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연핑크 장미 꽃다발을 들고 서서 뿌듯해하며 말이다. “샘(선생님) 좋아하시는 장미로 며칠 전부터 예약해놓았던 거예요. 기억나세요? 저희가 국어시간마다 노래 불러드렸잖아요.”

혜진이의 합격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도 듣고, 해외 다녀와서 좀 늦어진 가람이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며, 문득 이 아이들의 싱싱한 현재가 부럽고, 창창한 미래가 기대가 되었다.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아이들은 거의 1년을 내가 수업시간에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면 매번 “장미”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노래는 나를 웃게 했고, 아이들 스스로도 내 반응을 살피며 목이 터져라 부르는 노래를 이벤트처럼 즐겼던 것 같다. 다시 돌아온 한겨울 연핑크 장미향이 잊혀졌던 추억과 함께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며 행복을 전해준다.

많은 제자들이 그랬듯이 혜진이와 가람이의 연락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어른이 되고 삶의 현장 속에 던져지면 학창시절 선생님과의 인연까지 지속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연락하는 그 순간까지 가족과 친척 외의 좋은 어른으로서 순수한 인연을 유지하며 그 자리에 있어주리라.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그 자리에 말이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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