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수 없이 방치 현실
대전 원도심 일대가 근대문화예술지역 특구로 지정된 가운데 개발, 철거, 훼손 등으로 사라지는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근대도시 전형성을 가진 원도심은 근대유산 자원이 풍부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보존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동의 부족 등에 따른 철거 사례가 지속적으로 빚어지기 때문이다. 대전 근대사가 박제된 원도심 근대유산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해본다. 편집자
<글 싣는 순서>
1. <르포>대흥동 뾰족집을 아십니까?
2. 전국적으로 사라지는 근대유산
3. 원도심 근대유산 기록화 사업 추진하는 대전시
대전 중구 대흥동 일명 집 잃은 집이라고 불리는 ‘뾰족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비게이션으로 찾아도 대흥동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아파트 주변을 빙빙 돌 뿐이다. 여전히 내비게이션 화면은 아파트 한 복판만을 가리킨다. 뾰족집은 대흥동 429-4번지에 있었다. 하지만 현 주소는 37-5번지다. 으쓱한 곳을 지나 원룸과 모텔들을 돌고 돌다 간신히 찾은 뾰족집은 여유 없는 골목의 좁은 한 자리를 붙잡고 서 있었다.
원뿔형 지붕 때문은 뾰족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20년대 일본 가옥의 특징에 따라 ‘다다미방’과 ‘도코노마(일본 건축양식)’로 구성됐으며, 세부적인 건축디자인은 일부 서양 양식으로 동서양의 건축이 혼합된 의미 있는 건물이다. 지난 1929년 철도국장 관사로 건립된 후 2008년 등록문화재 제377호로 지정됐으며, 주거건물로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주택 중 하나다.
그러나 재개발 이후 오래된 건물의 명성은 맥이 끊겼다. 뾰족집은 지난 2010년 10월 재개발조합에 의해 목조 뼈대만을 남긴 채 철거됐다. 대흥1구역주택재개발 구역 내에 있던 뾰족집은 시에서 보전을 위해 인근 부지로 이전, 복원될 예정이었지만 재개발조합 측 직원들이 무단으로 문화재를 해체한 상황이었다. 문화재 훼손으로 관계자들을 기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뾰족집은 지난 2012년 5월 문화재위원회에서 뾰족집 실측 설계도면 및 계획안에 대한 심의·의결을 거쳐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더 심각해졌다. 재개발조합이 재정난으로 건설업체에 공사잔금을 미납하는 등 자금 압박을 겪으면서 뾰족집에는 약 20억 상당의 근저당이 잡히게 됐다. 팔지도 못하는 지경에서 완공도 하지 못해 문화재로써 관광을 위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거나 실사용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대전시에 따르면 이전·복원공사가 마무리된 뾰족집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준공되지 못했다. 이전된 뾰족집은 부실한 창호, 약한 난방, 정화조 부재, 2층의 떨어지는 하중 능력 등 외관만 유지할 뿐 내부 디자인은 완성되지 못했다. 담장은 두를 공간이 부족해 입구 쪽은 아예 개방된 형태로 노출돼 있고, 마당엔 나무나 풀, 화분이나 인공조형물 등 그 어떠한 조경도 설치돼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전 부지 선정부터 진정성이 결여된 복원이라고 꼬집는다.
대전 문화단체 관계자는 “뾰족집은 근대건축물이 이전되고 복원된 첫 번째 사례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뾰족집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대유산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성룡 기자 dragon@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