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철 대전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경사

 

그날은 도시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기세등등한 칼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코끝까지 전해왔다. 날씨는 춥지만 발걸음은 설렜다. 오랜만에 휴가를 내서 아이들과 함께 실내 놀이터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자동차의 뒷모습이 이상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뒤쪽 범퍼 전체가 깨져있고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속상함이 밀려왔다. 꽤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 긴 겨울밤을 홀로 지새웠을 자동차를 바라보니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아이들과 약속까지 했는데 난감했다.

나는 경찰관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나름의 감각과 촉(觸)을 이용해 용의차량을 추적해 나갔다. 파손된 위치와 모양을 보니 트럭이 후진을 하면서 충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먼저 차안에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아쉽게도 전원이 꺼져있었다. 주변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더 나아가 주변에 목격자가 있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경찰관으로서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닌 관계로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기에 포기하였다.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찰관인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112번호를 눌렀다. 신고 후 경찰차를 기다리는데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경찰이 언제 도착하지? 시계를 보고 또 보는데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심장이 핸드폰 진동처럼 떨리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었다. 112신고를 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몇 해 전 지구대에 근무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지구대는 전국에서도 112신고가 가장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신고가 많을 때는 하루에 100여 건이 접수되고, 1년에 3만 여건의 출동을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폭주하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다보니 수많은 신고들은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지쳐있던 나는 점점 무감각해졌고 친절과 정성을 다하기보다는 사무적이었으며 빠른 사건처리와 종결이 중점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 112에 신고한 시민들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했을까? 가장 다급한 상황이며, 경찰이 정말 필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수 천 건의 반복되는 신고일지 모르지만 신고자에게는 정말 절박한 상황에서 경찰만을 믿고 의지했을 것이다. 그것이 강력범죄 신고가 아닌 단순 민원신고인 경우에도 같았을 것이다.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찰의 입장에서만 있다 내가 직접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그날 112신고자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했다.

그날을 되새기며 국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경찰관이 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하였다. 시민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불편도 나의 문제이며 내 가족의 일처럼 생각하겠다. 어둠을 온 몸으로 받아내어 뱃길을 밝히는 등대처럼 따스한 손길로 모든 순간, 모든 곳에서 믿음을 줄 수 있는 진정한 국민의 행복지킴이가 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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