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환 건양대 교수(법학박사)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병원화재로 45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부상한 대참사를 보면서 참담함을 넘어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관료들의 안이함과 부패로 인해 20년 수명의 배가 30년으로 연장되고 일본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를 운행하다 퇴역한 배가 도입돼 아까운 수백 명의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는데 제천에 이은 밀양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세월호 문제는 이제 마무리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이미 세월호가 돼 버렸다.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 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세월호와 같은 어이없는 사고에 늘 노출돼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시점에서 왜 우리에게 대형참사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밀양사고에서 화상사망자는 한 명도 없는데 연기로 인한 질식사나 중환자 이송과정에서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 아까운 생명이 희생됐다. 바로 다음 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 했다는 병원관계자의 말을 들으면서 ‘설마’ 하는 안전불감증이 큰 화를 자초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우리 선조가 사소함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아무리 중대한 결과도 반드시 사소한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크고 작은 조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1대 29대 300 법칙’, 또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대형 사고가 한 건 터지기 전 경미한 사고가 29회 발생하고 이런 경미한 사고 발생 이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는 사소한 징후가 300회 나타난다는 것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 직원이던 허버트 하인리히가 5000여 건의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이 법칙은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 등에 폭넓게 적용된다. 실제 10년간 국내 교통사고 분석을 보면 1회의 사망 사고에 35~40회의 중·경상 사고가 있었고 수백 건의 위험한 교통법규 위반사례가 적발됐다고 한다. 이는 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다. 무수한 사고의 징후를 무시했을 때 사고가 찾아온다. 상품에서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다면 29회의 고객 불만이 접수됐을 것이고 직원들은 300번 정도 ‘이상하다’는 징후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징후를 포착해야만 대형 사고를 방지 할 수 있다. ‘사소하다’는 말은 ‘대단치 않음’, ‘중요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대단치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함을 간과한 결과가 중대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고는 작은 문제가 쌓이고 쌓여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터지게 된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 사고에 대한 이론이지만, ‘역발상’을 하면 ‘안전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사고를 예고하는 경미한 징후에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면 대형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바로 ‘역(逆) 하인리히 법칙’이다. 사소한 징후라도 놓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평소 안전수칙을 잘 지켜 징후조차 없애는 것이다. 차제에 우리의 안전시스템을 기본부터 꼼꼼히 짚어보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영종도 낚시배 사고 다음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아까운 국민의 희생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늦었지만 과감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면 과감해야 한다. 사고 때마다 수십 명이 사망하는 후진적 안전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땜질처방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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