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란 무대에서 사람은 각자의 인생이란 드라마를 선보인다. 드라마 속 주연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언제나 주연일 것만 같았던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바로 사랑하는 연인과 만나 가족을 꾸리기 시작할 때다. 이 때부터 드라마 속 중심은 당연히 가족이 된다. 언제까지나 주연일 줄 알았던 자신은 이제 가족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뒤에서 묵묵히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렸지만 오히려 이러한 드라마를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주연이 가족으로 바뀌는 순간 외부 환경은 열악해진다. 좀처럼 내리지 않는 물가와 집값, 체력 부담이 큰 육아까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어떻게든 쫓아가지만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소화하는 게 쉽지 않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나 가야지’ 하는 작은 각오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 슬플 뿐이다. 그러나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다. 비록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의 처음은 대청댐물문화관에서 출발한다. 대청댐물문화관 뒤편 능선을 따라 푸른 또 하나의 하늘처럼 펼쳐진 숲길의 시작점이다. 아직 동장군의 입김이 귀불을 강하게 치지만 신발을 넘어 발바닥을 자극하는 흙길의 촉감은 봄이 머지 않았음을 알린다. 얼굴을 때리는 겨울의 추위와 발끝에서 넘어오는 봄의 기다림의 촉각의 서로 대립함이 오히려 마음을 자극한다. 왼쪽엔 강하지 않은 햇빛을 머금은 대청호가 북풍의 흔들림에 넘실거리며 가을의 황금빛처럼 반짝인다. 간혹 잔잔한 황금빛을 시샘하는 철새떼가 날갯짓으로 하늘을 비추는 대청호의 아름다움을 흐리지만 금세 제 모습을 찾는다. 그러나 계속된 철새떼의 심술을 피하고자 물안개를 피우며 자신을 감추느라 바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숲길이 끝날 때쯤 길을 잃을까 곳곳에 설치된 벤치와 이정표는 차가운 날씨로 긴장된 몸을 풀어준다. 비교적 높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르막으로 기분 나쁘지 않게 차오른 땀과 거친 들숨, 날숨이 하얀 뭉게구름처럼 뭉친다. 숲길이 끝나자 인근 로하스가족캠핑장과 멀지 않은 대청댐보조여수로가 나타난다. 흙내음의 길이 사라지고 딱딱한 아스팔트길이 시작돼 나름 발걸음이 편해지지만 흙길의 불편함이 금세 그리워진다. 높은 보조여수로 건너에선 다시 한 번 대청호의 장관이 나타나며 불편함에 대한 향수를 잊는데 도움을 준다. 잠시 흙길의 그리움을 잊고자 그저 불어오는 바람, 바람에 출렁이는 대청호의 물결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때 아닌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명상을 마치면 이제 또 하나의 소소한 장관이 일행을 맞이한다. 미나리원 2800본과 물억새 등 21종 5만 2010본이 식재된 이촌지구생태습지다. 반짝이는 대청호를 배경으로 적지 않은 억새가 대청호의 밑그림을 자처하며 겨울의 쓸쓸한 분위기를 배가 시킨다. 대청호를 마주하고 위치한 카페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또 다른 매력을 뽐낸다.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숲길이 맞이한다.

동서남북에서 바라보는 색다른 모습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게 한다. 숲길에 들어서면 대청호를 1구간에서 대청호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다. 왼편에선 대청호의 움직임을 모두 육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벤치와 정자가 다시 한 번 등장하며 쉬었다 가라, 손짓한다. 두 번째 숲길은 약 10분 정도면 주파가 가능하고 이번엔 강촌지구생태습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촌생태습지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쉴 수 있는 정자가 설치돼 편안히 대청호를 바라보기 담백한 경관을 선물한다. 이곳은 대청호에서 가장 일출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새벽이면 물안개와 함께 대청호를 뚫고 오르는 붉은 태양이 장관이다.

이촌·강촌생태습지를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걷기 운동을 해야 할 시간이다. 대청호수로로 진입해 비교적 높은 고지에서 트레킹을 해야 한다. 오르막이라 숨은 차오르지만 힘들 때마다 보이는 데크길이 지친 발과 숨을 고를 시간을 준다. 또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대청호의 청명함은 눈부심이 극대화 돼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청호와 새순이 돋을 준비를 한 벌거벗은 나뭇가지, 연속적이진 않지만 데크길이 지겨울 때쯤이면 작지 않은 크기의 공원이 억새와 함께 반긴다. 1구간의 절반 이상을 지났다는 하나의 신호다. 계속 차도와 함께 1구간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촌·강촌지구생태습지 이후로 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 강촌지구생태습지에서 약 7㎞면 1구간의 마지막을 알리는 이정표가 기다린다.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보고서
정식 구간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대청호로하스가족캠핑장의 존재가 1구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름처럼 가족캠핑장을 중심으로 가족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상당히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군부대가 있는 곳에서 실시 중인 가족과 함께 하는 1박 2일 병영체험 등은 최근 많은 자치단체가 확대하는 추세인데 이는 가족과 함께 1박 2일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사실상 전무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캠핑장 근처에 풋살연습장을 통해 가족 단위 대항전 등을 개발하는 방안도 긍정적일 수 있기 때문에 캠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즐길거리 개발이 시급하다. 주차면적도 넓어 대규모 가족단위 축제 신설도 검토할 요소다.
대청댐물문화관, 이촌지구와 강촌지구의 생태습지 역시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유리하다. 1구간에 미호동 청동기유적지 역시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좋은 인프라를 갖췄다. 이촌지구와 강촌지구 사이에 위치한 숲길에선 계족산의 맨발걷기 프로그램과 유사한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장점이 될 수 있다.
다만 1구간 중후반 대청호수로와 만나는 구간은 차도와 인접해 위험할 수 있다. 데크길 확장 및 연장이 필요하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영상 촬영·편집=정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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