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근무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실시

#. “잘 쉬어야 일도 잘하죠.” 대기업 신입사원 강 모(27) 씨. 강 씨는 최근 회사 근로시간 단축 방침에 따라 오후 5시면 회사를 나설 수 있게 됐다. ‘퇴근 눈치’를 보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오후 6시가 넘지 않는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보장되다 보니 강 씨는 지난달부터 배드민턴 모임에 가입했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됐다.

#.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 모(30) 씨는 이번 설 연휴 기간에 여행을 다녀왔다. 큰집에 내려가지 못한 미안함에도 여행을 강행한 데는 회사의 강한 근무강도 때문에 이 기간 외에는 시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가를 다녀와서도 ‘연휴 병’에 시름해야만 했다. 야근은 여전하고 연차 또한 원하는 날짜에 쓸 수 없다 보니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바람이 불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선 여전히 옛 근무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야근과 잦은 회식 등으로 일상생활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는 직장인들이 일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게 되면서 트렌드로 떠오른 말이다.

이미 국내 대기업에선 워라밸 열풍이 불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근무시간 단축을 시행해 하루 7시간만 근무토록 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SK하이닉스, LG전자 등도 정부와 정치권의 최대 근무시간 단축 법 개정에 앞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험 가동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워라밸’ 은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말한다. 특히 대기업과의 근무환경 격차가 최근 더 피부에 와닿으면서 업무 의욕 저하에 젖은 한숨이 나날이 깊어가고 있다. 외식업체에 종사하는 A 씨는 직업 특성상 주말이 없고 휴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여행은 꿈도 못 꾼다. A 씨는 “업무 준비와 정리까지 근로시간에 포함하면 하루 일과시간이 10시간이 넘는다. 임금도 최저임금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라 업무환경, 임금 어디서도 업무의욕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정 모(여·30대) 씨도 ‘삶은 일’이라며 푸념했다. 정 씨는 “어린이집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연차의 개념이 없다. 휴가는 원생들의 여름과 겨울 방학기간에 맞춰 쓸 수 있는데 이 기간마저도 선생님들과 돌아가며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원하는 날짜나 긴 휴가를 보장받지 못한다”라고 하소연했다.

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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