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 위원장

 

스위스 정부는 지난 1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3월 1일부터 살아있는 랍스터(바닷가재)를 끓는 물에 넣으면 벌금형에 처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랍스터를 조리할 때는 반드시 기절시켜야 하며 그것도 전기충격 등 제한적인 방법만 허용한다. 산 랍스터를 얼음에 재워 운반하는 것도 금지한다. 랍스터도 고등신경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무척추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 일반적인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갑각류나 연체동물 같은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고 심지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독일의 동물보호법은 물고기도 감각이 있는 동물로 간주해 정당한 이유 없이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를 처벌한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보편적인 생명의 존엄과 동물 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에 관한 법·제도가 동물보호법의 고민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장애인이 폐지하라고 투쟁해온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아직 살아 있다.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 입법예고 이후 3차례에 걸쳐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종교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됐거나 계류 중이다.

최소한의 삶의 질 보장을 위해 노동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법으로 정하는 최저임금법이 있다. 작년 대선에서는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홍준표 후보까지 동의했는데도 막상 최저임금이 오르자 그것을 무력화하려는 온갖 선전선동과 꼼수가 판친다. 가장 가관인 건 자유한국당이 설날을 앞두고 ‘최저임금? 세금 322조’라고 내건 플래카드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세금이 무려 322조 원이나 소모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아래 ‘2050년까지’라는 작은 글씨가 보일락 말락 한다. 앞으로 33년 동안 322조 원이 들어간다는 근거는 도대체 뭔지.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2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8개월 만에 다시 두 자릿수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취업준비를 하는, 사실상 실업자까지 포함하는 체감실업률은 정부 통계치로 20% 수준이지만 일부 조사에 따르면 30%를 넘어 50%까지 육박한다. 그나마 어렵사리 취업하더라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세상 한 복판에서 많은 청년들에게 미래는 장밋빛이 아니라 절망일 뿐이다.

무민세대라는 말은 이렇게 절망적인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신조어다. ‘무(無, 없다)+Mean(의미)+세대’의 합성어로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20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떠밀려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난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을 통해 위안을 얻고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수 아이유가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형식의 제약회사 광고를 찍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 ASMR은 무민세대가 가장 즐겨 소비하는 영상 중 하나이다. 유투브에서 ASMR을 검색하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영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극심한 사회양극화 시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저마다 살길을 찾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20대만의 현상일 수는 없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무리 애써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절망이 더 커지면 의미 있는 일에는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은 ‘무민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기득권층이여, 기성세대들이여, 권력과 탐욕을 내려놓고 이미 가진 것은 젊은 세대와 사회적 약자와 나누면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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