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사람과 함께 울기 첫 번째 몸짓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안전하고 안락한 주거환경을 보장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국가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주거기본법이라는 법률을 제정해 나름대로 국민의 주거권 실현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지원도 주거취약계층에게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겠지요. 하지만 국가가 국민의 주거권실현을 위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이번 공공임대주택인 해피랜드 화재사건이 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단순히 공공임대주택 지원으로 끝난다면 서민들에게 저렴주거 제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고 있는 국민의 주거권 실현은 요원한 상태입니다.

해피랜드 화재사건은 공공임대주택에서 생활하는 주거취약계층이 재해를 당했을 때,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화재라는 대형사고가 생기면 건물주인 국가는 화재보험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나름대로 보호를 받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세입자이기에 어떤 보상이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순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집니다. 이게 바로 오늘 우리사회의 공공임대주택의 현실입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단순히 세입자들이 아닙니다. 국가가 주거권실현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대상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재해로부터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해피랜드 사건을 통해 국가가 전향적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희망은 가져봅니다. 조속히 화재와 같은 재해로부터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피해를 입은 해피랜드 화재피해 주민들에게는 그 제도가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기에 피해주민 돕기 위한 바자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작지만 함께 힘을 모아 희망을 노래해 보려는 것입니다. 이번 바자회가 그들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지만 너무 힘들고 억울해서 울고 있는 그분들 곁으로 다가가 함께 울어주는 길이 바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연대는 비를 맞는 이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지금 비를 맞고 울고 있는 해피랜드 화재피해 주민들의 곁으로 갑시다. 그리고는 그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를 이루어 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선언한 이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된 곳, 아픈 사람이 있는 곳, 우는 사람이 있는 곳, 그곳에 우리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요, 세상의 중심임을 선언하는 것일 것입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 주십시오. 그곳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서구 탄방동에 위치한 공공임대주택 해피랜드 화재피해주민 돕기 바자회 개회식 인사말)”

해피랜드 화재사건은 지난 2016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사건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오훈정책위원장과 주민대책위원장이 피해주민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에 벧엘의집이 앞장서 추진해 달라며 찾아왔다. 참 절묘하게 그 시기 벧엘의집은 2018년 표어를 “스플랑크니조마이/우는 사람과 함께 울자” 라고 막 결정했을 때였다. 그분들의 요청을 듣는 순간 아! 하나님은 2018년 첫 번째 벧엘이 만나야 하는 우는 사람은 바로 해피랜드 화재피해주민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저 그들과 함께 울면 된다. 그래서 흔쾌히 참여하기로 하고 최선을 다해 자선바자회를 치러냈다. 목표액은 다 채우지 못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도 있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벧엘의집이 울고 있는 이웃과 함께 한 첫 번째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앞으로, 또, 누가, 벧엘의집의 문을 두드릴지는 몰라도 1년 동안 함께 울어야 할 자리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함께 우는 벧엘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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