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이제 국민의 시선은 다시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올림픽의 감동이 고스란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다. 이번 지방선거는 개헌 논의까지 겹쳐 있어 관심의 크기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개헌, 다시 말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가 운영의 원칙과 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개정할 것이냐에 대한 개헌 이슈도 다양한데 우리 지역사회에선 미국과 같은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일본과 같은 의원내각제 등 국가운영체제에 대한 내용보다 ‘균형발전·자치분권’ 이슈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것 같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촛불혁명을 통해 경험하면서 ‘스스로’, 그리고 ‘참여’에 대한 잠재적 욕구가 분출된 탓이다. 국가의 미래를 지배 권력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다.

이 같은 국민 저력의 성장을 바탕으로 문재인정부는 ‘균형발전·자치분권 개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아니라 마을공동체·지자체가 지역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통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모멘텀을 마련하자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은 이미 시대정신이다. 정부가 기획하고 결정해 예산을 분배하는 식의 중앙집권적 지배구조는 이미 한계점을 노출했다. 미래 사회를 가장 핵심적으로 규정하는 창의적 융통합의 4차산업혁명 흐름과도 구색이 맞지 않는다. 정부가 입법과 재정 운용 등의 권한을 틀어쥔 수직적 지배구조의 틀 안에선 창의적 혁신을 담보할 수 없다. 정부가 결정하면 국민은 따르는 시대는 지났다. 재도입 20년이 지난 지방자치제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때가 온 거다. 5000만 국민 하나하나의 꿈과 희망을 정부가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그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자체의 역량을 키워야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

균형발전 역시 시대의 요구이자 흐름이다. 사람이든 돈이든 모든 게 수도권으로 몰려 지방은 공동화되는 이 불합리를 바로잡아 보자는 요구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있어왔다. 박정희 대통령도 수도 이전을 계획했을 정도니 이 같은 요구의 정당성은 확보됐다고 봐야 한다. 정권 차원이 아니더라도 국토의 균형적 발전은 이미 헌법적 가치다. 헌법엔 ‘국가는 지역간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참여정부 때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을 통해 균형발전의 틀을 잡았지만 보수정권 하에서 이 특별법은 누더기가 됐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정권과 대기업을 위시한 기득권들이 ‘짜웅’하는 사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졌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균형발전에 대한 요구도 커졌으니 기계적으로 수도권의 인적·물적 자원을 나누는 차원의 과거 균형발전 개념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하는데 여기서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부가 균형발전의 틀을 짜는 게 아니라 지방 혹은 지역 지자체 스스로가 역량을 키워 지역 특색을 반영한 균형발전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 10년 전 수도권 규제의 빗장을 푼 결과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온데간데없고 서민경제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경제정책에서 파생된 부가가치의 결실은 서민·중산층이 아니라 수도권 대기업을 위시한 기득권의 몫이었다.

지방의 자치 역량을 키우고 여기서 지역의 특색을 살린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창의적인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요즘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투표를 하는 일은 물 건너 간 듯 하지만 논의 자체를 멈춰선 안 된다. 10년 만에 찾아온 균형발전·자치분권 이슈가 이번 정권에선 반드시 매듭지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지방의 상대적 박탈감을 이제는 보듬어줄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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