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민주의거 58주년

1960년 3월 8일. 그날의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잊힌 일처럼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그 세월 40년. 장구한 역사에 비하면 격세지감일 수 있다는 의지로 당시의 주역들은 침묵을 깨고 1960년 3월 8일로 되돌아갔다. -3·8민주의거 창간호 김용재, ‘3·8민주의거, 역사의 불꽃’ 

1960년 3월 8일 대전에서도 4.19혁명의 불씨를 틔웠다.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과 부패, 불법적 인권유린에 대항해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민주와 자유, 정의를 위한 순수한 열정으로 불의에 항거했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역사의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이날 1000여 명의 대전고 학생들은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야당부통령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와 때를 맞춰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독재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대전 시내 고교생들이 연대해 시위에 참가하기로 한 작전은 사전에 발각돼 경찰의 극심한 저지를 받았다. 

결국 8일은 대전고등학교 학생들만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9일에는 경찰에서 4개 학교 학생대표 24명을 연행, 구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일에는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 600여 명이 자유당의 그릇된 정부통령 선거전략을 규탄하고 구속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학원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를 감행했다. 이 과정을 모두 3·8민주의거로 규정한다.

대전 민주화운동의 최초,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주춧돌인 3·8민주의거는 지난 2013년 4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 통과로 공포됐다. 이에 따라 3·8대전민주의거는 2·28대구민주화운동, 3·15의거, 4·19혁명, 부마항쟁, 6·10항쟁과 함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당시 주역들로 구성된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는 2000년 40주년 기념 특별강연회와 세미나로 시작해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연초 신년하례식과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3·8기념식, 4·19진원지 탑 헌화 및 시낭송회, 학생백일장, 3·8푸른음악회, 자료집 발간 등을 매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전고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3·8민주의거 재현행사를 열어 지역 학생들에게 그날의 의미를 심어주기도 했다. 올해는 8일 대전시청에서 기념식과 더불어 그날의 기억을 담은 사진전시회를 열고, 내달 14일에는 58주년 기념 제1회 민주시민 계족산걷기대회도 개최한다.

이처럼 꾸준한 노력으로 지난 2009년에는 대전시 조례로 3.8민중의거 기념일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회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국가적인 관심을 요구하는 국가기념일 지정과 3·8민주의거 기념관 건립, 민주공원 조성, 교재개발 등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기념일 지정의 경우 지난해 12월 1일 국회에서 ‘3·8민중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통과돼 올해 안에 지정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대구 2·28민주화운동이 지난 1월 기념일로 선포됐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산이나 대구 등에 비해 범시민적 관심이나 지원이 부족하다는 과제가 남는다. 3·15 마산 국립묘지나 대구 2·28중앙공원 등처럼 시에 3·8의거를 기념할 만한 지원이 없어서다.

김용재 사업회 공동의장은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실제적인 힘은 3.1절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그리고 4.19중심 민주화운동 등 3대 정신이다. 그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4.19가 있고 4.19의 주춧돌이 3.8이다”라며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 전라도에는 5.18기념관이 있고 마산 3.15 국가기념일 등이 있지만 우리 충청도는 전혀 없다. 이런 부분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선영 기자 kkang@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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