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태 충남대 법학전문대 전문위원(법학박사)

 

저명한 정치철학자이면서 헌법학자인 뢰벤슈타인(K. Loewenstein)은 “대통령제는 미국 국경을 넘는 순간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고 했다. 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이러한 평가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인 권력간 갈등을 통치구조 차원에서 논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담론은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사실적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

일단 국민의 기본권이 담보되지 않는다. 즉 국민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 제왕적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과 그의 주변인들이라도 행복해야 할 텐데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만 보더라도 그렇고 MB정권 실세들의 추락을 보더라도 자명하다.

대통령을 수괴로 하는 범죄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 취해있는 사람들은 불나방과 같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든 인간의 속성이든 권력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모이게 돼 있다. 권력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맨손으로 권력의 중심에 모여들지도 않겠지만 돈 없이는 권력에 다가가기도 힘들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대부분 이 문제들은 부정부패로 귀결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제라는 권력지향적 통치구조는 대통령 스스로와 모든 국민을 힘들게 만드는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에 불과했다.

이처럼 권력구조의 모순에서 오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개헌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하지만 ‘5년 대통령 단임제’라는 권력구조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개헌 문제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계속 뒤로 미뤄져왔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후 30년 가까이 되도록 헌법 개정이 없었다.

1987년 개헌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세계화, 지식정보사회 등 새로운 환경을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과 정치적 비판능력, 지식수준 등이 모두 향상됐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에 보다 적합한 통치구조의 구축,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 다문화사회로의 발전에 따른 법적 대응, 선진국가로의 진입에 대비하기 위한 경제제도의 개혁, 그리고 진정한 지방분권국가의 구현을 통한 국가역량 제고 및 통일에 대비한 법적 토대의 구축 필요성 등의 견지에서 그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 현재의 헌법 환경은 과거 비민주적 상황과는 다른 시대에 직면해 있다. 촛불혁명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되고 있는 헌법 개정에 대한 주된 주제는 국가권력구조의 분산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 또는 이원정부제냐’하는 식의 수평적 권력구조 형태로서 정부형태에 대한 논의다. 이는 우리가 아직 우리 현실에 맞는 통치구조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고 통치구조의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방분권을 통한 수직적 권력구조의 분권화에 대한 것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권력분립, 기본권보장이라는 중요한 헌법적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 관련 조항을 단지 두 개만 둠으로써 헌법이 의도하는 지방분권의 실질적 내용과 수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 실현에 대해서도 법률에 유보함으로써 국가권력구조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직적 권력분립의 골격이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현실이다. 지방자치법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사무배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동안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에서 국가행정중심의 행정체제를 극복하지 못함에 따라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구현되지 못하고 일부에서는 무늬만 지방자치라고 하는 비난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우리나라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방분권의 내용과 수준이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틀을 헌법에 명시해 지방자치에 관한 법률 유보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법 논리적 모호함을 종식시켜 실질적 지방자치제도를 구현할 수 있다.

헌법은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의 존재 형태와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규정하고 있는 기본법이다. 국가의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정하고 있다는 것은 헌법이 모든 국가질서의 바탕이 되고 한 국가사회의 최고의 가치체계라는 뜻이다. 헌법을 바로 세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