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꽃이피는 신화 6편

◆민테(Minthe)와의 바람

하데스(Hades)는 제우스(Zeus)의 형이었으나 지하세계를 맡고 죽음을 상징하면서 인기순위가 밀리더니 끝내 12신에서도 빠지게 됐다.

그러나 그는 피는 물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하듯 기회는 많지 않았으나 틈틈이 바람을 피웠다. 부인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얻기 위해 벌인 납치극은 세상을 망하게 할 뻔했다. 대지의 여신이 딸이 사라져 찾아다니느라 땅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타협을 이루고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지만 하필 석류 세알을 먹어 지하세계에 세 달을 머물러야했다.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던 페르세포네였다. 그리스 여신 중 성질머리 3인방엔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페르세포네가 들어가는데 굳이 한 명을 추가하자면 아르테미스(Artemis)도 포함된다.

페르세포네는 딱히 선택의 겨를도 없이 하데스의 아내가 됐지만 불만이 장난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하데스는 아름다운 요정과 바람을 피웠다. ‘민테’였다. 그러다 페르세포네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향기는 강했지만 꽃은 별 볼일 없는 허브를 만들었다. ‘민트(Mint)’였다. 우리말로 박하다. 시원한 향으로 기분 좋게 하는 박하는 무슨 맛? 치약 맛이다.

◆참나무와 보리수

제우스와 헤르메스(Hermes)는 프리기아(Phrygia) 땅을 돌아다니다가 지쳐버렸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터덜터덜 걷는 모습이 영락없는 나그네 신세였다.

이들은 너무나도 지쳐 어느 마을에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을 열고 사연 들어주는 집도 없을 만큼 인심은 싸늘했다. 그러다 마을 어귀 초라한 집 문을 두드리니 호호할머니 바우키스(Baucis)가 나왔다. 그리고는 두 나그네에게 흔쾌히 들어오라 권하고 얼마 안 되는 재료로 정성껏 요리를 했다. 바우키스는 고기가 겨우 작은 조각뿐이자 반을 나누고 잘게 다져 고기 맛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반은 다음날 아침 찬이었다. 와인도 별 볼일 없었지만 아끼지 않고 깨끗한 병에 담아서 내었다. 어스름해지자 더 허름한 노인이 들어왔는데 남편인 필레몬(Philemon)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음식은 필레몬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고 필레몬은 집에서 가장 좋은 양탄자를 꺼내와 손님들 발밑에 깔아줬다. 별 볼일 없는 음식을 맛나게 먹어주는 손님들이 감사했을 뿐 노부부는 배고픔과 부족함에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가도 음식과 포도주는 줄지 않았다. 네 명이 같이 먹어도 남아돌았다.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그제서야 두 나그네가 신인 것을 알고 바닥에 내려 앉았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이윽고 본모습을 보이며 표독스런 사람으로 가득한 마을을 물속에 수장시켜버렸다. 언덕위에 노부부의 집은 으리으리한 궁전으로 변해있었다.

제우스는 물었다. “소원이 무엇이냐?” “저희는 살만큼 살았으니 한 날 한 시에 떠나고 싶습니다.”

예상을 빗나간 답이었다. 나에게 물었더라면 “세종에 집 한 채만 주십시오. 호수공원이 코앞에 보이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을 텐데. 신은 나에게 묻지 않았다.

궁전을 지어준 신의 배려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말을 마친 순간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몸에 나뭇잎이 자라는가 싶더니 필레몬은 참나무가, 바우키스는 보리수가 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원히 함께였다.

시경에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표현이 있다. 평생을 함께하고 같은 굴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외로운 삶 힘이 되는 말이다.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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