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허용 논란에 3년째 제자리
구조적 문제 원점서 재검토돼야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 완화와 지역병원 활성화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의료계 내부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논쟁을 거듭하고 있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이렇다 할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다.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자원의 효율적 운영과 맞물려 환자들이 적절한 의료기관에서 적합한 의료인에게,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지원받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고 병·의원 등 1·2차 의료기관을 거친 후에 순차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자는 게 본래 취지지만 지금의 의료전달체계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상태다. 1·2차 의료기관이 미덥지않은 환자들은 질환의 경중을 떠나 상급종합병원으로 대표되는 3차 의료기관으로 향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병·의원 등 1·2차 의료기관은 환자가 없어서, 3차 의료기관은 환자가 너무 많다는 문제가 계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필요성은 지난 2015년 전국을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더 절실해졌다. 환자로 붐비던 대형병원 응급실은 메르스 감염의 진원지가 됐고, 이 곳을 거쳐 간 환자와 보호자들은 타 지역에서 또 다른 감염자를 양산했다. 감염병 위기 대응의 총체적 부실과 함께 취약한 의료 환경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지역 병원의 한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는 그야말로 지금의 의료전달체계가 감염병 등의 위기에 있어서는 취약하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며 “그 때부터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논의가 이뤄졌지만 벌써 3년이 지난 지금도 제자리 걸음”이라고 말했다.

이후 복지부를 비롯한 의료계,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가 출범했지만 논의는 좀처럼 진전되기 못했다.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1차 의료기관의 병상 허용을 둘러싸고 의료계 내부 의견 대립을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차 의료기관의 병상 및 단기입원 허용”을 주장하는 반면 대한병원협회는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견을 보였고 결국 양 측의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채 지난 1월 협의체는 공식 활동을 마무리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다시 논의되려면 시일이 꽤나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출범을 앞둔 의협 새 집행부가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장기적 관점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단기간에 정리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집 신임 의협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은 의사들의 진료행태와 국민의 의료이용 행태를 규제하는 내용이었기에 졸속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의료계가 논의를 거쳐 전문적인 정책 대안을 논의하고 만들어내야 하고 정부와 국회는 국민들의 의료이용을 제한하는 규제에 대한 장단점을 들어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 현재까지의 논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의료계 내부에서의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 활동이 종료된 만큼 향후 국정과제 차원에서 접근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1차 의료기관 활성화, 만성질환 관리 기반 구축, 입원진료 등 기능 중심의 개편을 추진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활동이 끝났다”며 “협의체 재구성 문제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고 우선 정부 국정과제에 관련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논의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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