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있다.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힌다는 의미다. 전쟁과 기아, 재해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땅에 달려간 국제구호활동가들 중 일부가 신음하는 현지인들을 돕기보단 몇 푼의 돈 등으로 유혹해 인권을 유린했다는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표적인 국제구호단체 중 하나인 ‘옥스팜’의 직원들은 지난 2011년 중미 국가 아이티에서 지진 피해 구호 활동을 벌이던 중 성매매를 했다는 스캔들이 불거졌다.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해 20여만 명이 사망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몹쓸 짓들을 했다니 할 말을 잃는다. 국제구호단체들의 인권유린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국경없는 의사회’나 ‘유엔평화유지군’ 등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르는 성 학대 및 착취와 횡령·괴롭힘·폭력 등 다양한 유형의 비위가 숱하게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데, 밖의 세상의 추악함에 혀를 찰 노릇만은 아니다. 우리 안에도 어처구니없게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며칠 전에는 인권전담 독립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부하 직원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직원이 버젓이 인권침해 사건 조사 업무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옹호 기관의 핵심 업무를 성범죄자에게 맡겨둔 꼴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정봉주 전 의원이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도 어처구니없게 만든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에 대해선 “기억이 전혀 없다”며 끝까지 버텼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정 전 의원 개인의 신뢰 추락을 넘어 그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의 명예에도 적잖은 상처를 입혔다.

여기서 주시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정부·여당의 신뢰 추락 조짐이다. 정 전 의원 문제 말고도 대전·충남에서는 해괴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충남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의혹에 따른 ‘안희정 쇼크’, 여성 문제 등으로 충남도지사 도전을 포기한 ‘박수현 낙마’에 이어 구본영 천안시장의 구속(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사태가 겹쳤다. 대전에서는 지난해 11월 권선택 전 대전시장이 실형 확정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대전·충남에서는 한마디로 민주당이 무너져 내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 속된 말로 재수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실제로 문제가 많아서일까. 어찌됐든 민주당으로선 엄청난 재앙이다.

문제는 이들 사태의 부작용이 민주당이라는 당내 충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남도정과 대전시정은 도지사, 시장 대행체제다. 행정은 그럭저럭 돌아간다지만 유형·무형의 공백과 후유증이 적지 않다. 충분한 행정 서비스를 못 받는 충남도민과 대전시민이 안쓰럽다.
중앙정부의 행정에서도 영 맘에 안 드는 헛발질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대표적인 곳이 환경부와 교육부다. 환경부는 역대 최악의 미세먼지와 재활용 쓰레기 대란에서 제 역할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육부는 대입과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사안을 둘러싼 졸속 행정으로 말썽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 쪽 장관을 경질하라는 청원이 쇄도한다. 이 정도로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업무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과 취임 후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의미의 재조산하(再造山河)를 제시했다. 문 대통령이 현재 거의 모든 분야의 적폐청산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도 ‘재조산하’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금 재조산하는 잘 되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정부·여당의 탈선과 무능이 계속된다면 재조산하는커녕 “당신들이나 잘 하세요”라는 비아냥이 쏟아져 나올 지 모를 일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일고 있다.

맹자는 “물(백성)은 배(군주)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고 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촛불’의 불빛이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촛불이 정부·여당을 향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선, 청와대부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을 다잡길 바란다.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비판적 조언을 하고, 대통령은 이를 경청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청와대가 민심을 얻는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을 제대로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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