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박영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판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각종 유언비어가 쏟아지고 인신공격적 발언이 난무하고 있는데, 언어는 그 사람의 얼굴이며 그 사회의 거울이라 말할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맞아 작은아버지 댁에서 여러 날 묵은 적이 있었다. 교직에 계신 작은아버지는 일상생활에서 부부 간에 존댓말을 사용하셨다. 그때까지 우리 집은 물론이고 동리에서도 부부의 언어생활에서 높임말을 쓰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를 더 좋아하게 됐다. 우리 아버지는 점잖고 때로는 엄하셔서 어머니도 아버지 앞에서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다 부부 간에 언쟁이 벌어지면 어머니도 밀리지 않으셨고, 아버지 입에선 험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작은아버지 내외분을 떠올리며 ‘나도 결혼하면 부부 간에 높임말을 쓰면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부부 사이에 존댓말을 사용하면 존경심도 생기고 사랑이 깊어지면서 언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혼 후 아내에게 공대하자 아내는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특히 부모님이 계실 때는 민망스러워했으나 그런대로 한동안 잘 지키면서 살았다. 그러다 아내와 말싸움이 벌어지면 막말을 하면서 점차 존댓말을 쓰지 않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높임말을 썼다. 우리 부부가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자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중간에 무너뜨린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가부장적 가정에서 성장한 나의 생활 태도나 언어 습관으로 인해 화가 날 때 함부로 말하면서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언어생활도 습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은 우리 사회가 각박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여유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우며, 사회적으로도 안정돼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세심하게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정치지도자들뿐 아니라 구성원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자극적이고 날카로우며 거친 표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어른들의 언어생활이나 행동양식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돼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순화되지 못한 언어를 많이 사용한다.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에 시달리고, 시험에 대한 심한 압박감 속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은 정신적 압박을 받을 때마다 건전한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통해 해소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욕설과 폭력적 언어를 통해 발산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매일매일 무의식적으로 거친 어휘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고 비방하면서 저속한 언어를 스스럼없이 남용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심지어 의미도 알지 못하는 욕설을 습관적으로 입에 달고 생활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들의 심성이 고와질 리 없다. 학교에선 아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어떻게 하면 거친 언어를 순화시킬 수가 있을까 고민하고 여러 대책을 세우기도 하지만 효과가 매우 작다.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데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존댓말을 사용하면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존중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친밀감이 없어지고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긴장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는 데 더 바람직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우리 아이들이 바른 가치관을 갖고 건전한 언어생활을 통해 바람직한 인격을 형성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가 더 밝고 건강하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이나 학교생활을 통해 학생들에게 먼저 ‘높임말 사용하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기에는 학생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마음과 거친 언어생활을 순화시켜 사회를 안정되게 만들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운동이 널리 퍼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차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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