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 교수

 

미리 정해진 길이란 없다. 태초에 없었는데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찾으려 하거나 앞선 사람이 갔던 길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가는 길은 최선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을 최적이라고 믿거나 스스로 최적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길은 흔히 문명처럼 구조화된 틀이라고 여긴다. 주변 것과 맺어진 순간의 약속이다. 주변이 변하면 새로운 약속을 할 수 있듯이 있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앞선 길이 있으면 그대로 따라 가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상상 속에 정해진 구조에 스스로를 옥죄는 것이다. 관습, 권위, 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전후좌우, 동서남북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관점에서 정했을 뿐이다. 이런 것이 고정관념이다. 불변의 가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슬에 묶여 한 발자국도 선뜻 내딛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파멸에 이른다. 고정관념이라는 틀과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기존 것에 의존하려는 마음, 현실적인 편안함, 익숙함과 태만함,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도 타협하라고 유혹한다. 때문에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나 다른 길이 많은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변화 시점에 있을지라도 머무르려고만 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낸 흔적 위에 난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흔적을 남긴 그 사람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낸 흔적을 좇았는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그 흔적은 앞서 간 사람에게 알맞은 길이었을 뿐이다. 뒤쫓는 사람에게는 앞서 간 흔적이 보탬이 될지 몰라도 보람은 적다. 신선함과 새로움, 가슴 떨리는 흥분이 없다. 대신 기존 것이 편하고 좋다고 유혹한다. 또 가르치려고만 한다. 지루함, 싫증과 짜증이 나는 이유다. 이럴 때는 앞선 사람이 간 길을 내가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없다. 나의 길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사실 어떤 길도 완벽하지 않다. 길은 언제나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가는 길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다. 새로운 길은 긴장감과 흥분감이라는 즐거움을 준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한다. 스스로 활력을 찾는 것이다. 또 배움의 기회를 준다.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되고 어중이떠중이 속에서 전에 마주치지 못했던 문제와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운다. 해답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고력은 길러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진다. 또 새로운 길을 가다보면 길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길 잃음이라는 실패는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얻어지는 성공보다 실패가 주는 절망과 고통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때문에 길을 잃음 자체는 가치 있는 과정이다. 잘못된 길을 한 번도 가지 않고 어떻게 옳은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으며,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위대한 위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지식을 쌓아 큰 학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 재미있는 얘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 교양인이 되려는 것도 아니며 완전무결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는 것도 아니다. 특정한 능력이나 기능의 향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삶의 진정성을 알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삶에서 늘 부딪치게 되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수용성, 진지하고 솔직하게 문제를 대하려는 진실성, 아무런 편견 없이 삶을 대하는 태도로 세상의 넓음을 알고 삶의 깊은 맛을 이해하는데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우선 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해야 한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가 새로운 생각을 쉽게 받아들인다. 또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할 수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활짝 열 수 있다. 이것이 고정관념이라는 괴물을 탈피하여 이전의 자기 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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