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은 만년고 교사

 

공립학교 교사는 한 학교에 계속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발령에 따라 움직인다. 대전 시내 150여 개의 중·고등학교 중에서 근무하게 되는 학교는 한 학교에 최대 5년까지 있을 수 있으니 40년 정도 근무한다 하면 평균 여덟 개 학교이다. 물론 중심지나 변두리 학교에 있을 수도 있고, 대규모 소규모 학교를 만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 따라 어느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될지는 모르지만, 인연을 맺게 되는 학교, 교사, 학생은 한정된다. 그러니 그들과의 인연이 과연 뜻깊지 않으랴.

예전 근무 학교 이름을 듣거나 근처를 지나면, 고향인 양 무척 반갑다. 그간 지나온 학교의 제자들을 지역 곳곳에 흩어져 일상생활 속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득 문득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물건을 사러 갔을 때 누군가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지면, 영락없이 제자일 가능성이 높다. 집근처에서 근무할 때에는 동네 대중목욕탕에서도 학부모님과 학생들을 마주치곤 했었는데, 이제는 시내나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확률도 높아졌다. 시간이 흘러 서로의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알 수 없는 익숙함이 서로를 신기하게도 끌어당긴다. “전에 OO학교 근무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묻는 직원들을 마주치면 모두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개는 신기하게도 학생 때의 모습이 기억이 나면서 웃음이 터지고 만다. 학생 때의 교복 입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사복을 차려입고 진지한 말투를 해도 기특하고 대견하게 보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견하고도 행복해 보인다.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이유도 모르면서 규칙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훨씬 더 큰 노동의 강도를 갖는 일에서는 그 아이들이 불평 하나 없이 나름 그럴듯하게 일을 잘 수행한다. 본인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일까. 월급이라는 노동의 대가가 있어서일까.

학교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그래서 어른 흉내를 내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청소년의 특권을 실컷 누리기보다는 어른들에 의해 혹은 미래 어른이 될 준비에 얽매여 그 시절을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 그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잘 준비되어야 사회에 나갔을 때 어렵지 않음을 알기에 그 시간들을 조금만 더 힘내어 견뎌주길 응원한다.

친구가 새로 발령난 교사가 예전 제자라며 어느덧 제자와 함께 근무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놀라워한다. 이제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만났지만, 은사님으로 다시 만난 관계는 아무리 어떠한 상황에서 만나도 그 관계가 유지된다. 그게 사제지간이 아닌가 한다. 처음에는 나의 첫 제자, 두 번째 제자 이렇게 셌었는데, 이제는 어느 학교 제자, 어느 학교 제자 이렇게 된다. 나의 지난 학교들, 어쩌면 나의 모교보다도 더 애정이 있는 그 학교들을 응원하고 또 그 속에서 만났던 제자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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