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민담] 이상한 냄비

1. 이상한 냄비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선비는 밥만 먹으면 공부만하기 때문에 집안 일은 아무것도 몰랐다. 이런 남편을 모시고 사는 아내는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하루는 선비의 아내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보니 소나기가 후드득 후드득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비의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마당에 널은 보리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선비의 아내가 비를 맞으며 헐레벌떡 달려오니 아니나 다를까, 마당에 널었던 보리쌀은 하나도 남지 않고 둥둥 떠내려가 버렸다. 화가 난 선비의 아내는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밖을 좀 내다봐야지 그냥 있는 양반이 어디 있어요. 나도 이제는 더 고생을 못하겠으니 돈을 벌어 오세요”

“.....”

“이제 당신이 먹여 살리든지 굶겨 죽이든지 당신 마음대로 해요. 나도 이제 혼자 죽어라 하고 일만 하지는 않을 테니.”

선비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돈을 벌러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날마다 앉아서 책만 읽던 선비가 어디서 무엇을 하여 돈을 벌으랴!

선비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얼마나 갔을까, 커다란 연못이 나왔다.

선비는 물빛을 바라보며 그 곳에서 잠시 쉴 양으로 잔디밭으로 가다가, 다 마른 논바닥에 올챙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마치 살려달라는 듯이 곰지락 곰지락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런, 저것도 생물인데 저대로 죽게 되다니”

올챙이를 가엾게 여긴 선비는 손바닥으로 떠다가 모두 연못에 넣었다. 올챙이들은 고맙다는 듯이 꼬리를 치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선비는 흐믓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여 돈을 벌 수 있을까? 얼른 돈을 벌어 집으로 가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선비는 늘 이런 생각을 하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녔지만 돈은커녕 그날그날 밥을 얻어먹기도 힘이 들었다.

봄에 왔던 제비들은 정든 땅으로 날아가고 기러기떼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자 선비는 집이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왕 돈을 벌지 못할 바에는 집으로 가서 아내의 하는 일이나 도와주면서 틈틈이 공부를 하고 싶었다. 선비는 그 길로 집을 향했다.

가을 해는 짧기도 짧았다. 선비가 집을 나와 연못가에서 쉬다가 올챙이를 살려 준 곳까지 오자 날이 저물었다.

달빛이 연못 위를 교교하게 비추어 주고, 이따금 옆에 있는 감나무에서는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연못물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선비는 하루 종일 걸었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고 피로하여 그 옆에 있는 잔디밭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달빛이 유난히 푸르렀다. 이런 밤이면 물가에 앉아 시라도 한 수 지으며 서서히 물가를 거닐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선비는 피곤해서 잠시 팔을 깍지 끼어 베고 누운 다음, 별을 바라보며 지금쯤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선비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발 있는 데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선비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랬더니 수없이 많은 개구리 떼들이 무엇인가를 끌고 왔다.

그것은 자세히 보니까 조그만 냄비였다. 선비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려니까 개구리들은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것은 언젠가 살려 준 올챙이들이 자라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선비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냄비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이 겨우 헌 냄비 하나만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본 아내는 뾰로통해졌다.

“먹을 것 좀 주오”

“쌀도 이제 꼭 한 톨밖에 남지 않았어요.”

“그것이라도 밥을 해주오.”

“ 참 당신도! 여태까지 무엇을 했기에 쌀 한 되 못가지고 오고 겨우 헌 냄비 조각이어요? 쌀이 없는데 냄비는 뭐 할 거예요?”

“허긴 그렇군!”

선비는 대답하기도 싫어서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벌렁 뒤로 눕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내는 두 눈이 똥그래 가지고 방으로 달려왔다.

“여보, 이거 이상한 냄비예요. 글쎄, 아까 그 쌀 한 톨을 넣고 밥을 했더니 한 냄비가 되지 않겠어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아내가 장난삼아 엽전하나를 넣고 끓였더니 잠시 후에 냄비 속에는 엽전이 가득했다. 이제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이 아니었다.

선비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과거에 급제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한편 선비의 아내는 선비가 과거 보러 간 뒤 날마다 엽전 만 삶아 내서 냄비가 그만 불에 녹아 버렸다.

그것은 바로 선비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발표한 그날 밤이었다.

<자료제공=대전학생교육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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