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충남지방경찰청 기획예산계 경감

 

운전을 하다보면 피우던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비난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똑같은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출근길 길게 늘어선 차량들을 피해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는 운전자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때론 나 자신도 그러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는 걸 싫어하면서도 자신의 얘기를 할 때는 남들과 비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편협한 논리를 내세워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한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내가 한 잘못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변명한다. 직장이나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이 요즘 세태다. 더구나, 그러한 행동은 지위고하, 남녀노소, 계층을 불문하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은 바로보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을 지적하는 행태가 난무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빗댄 촌철살인의 대명사로가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정쟁과 비방이 난무하는 정치권의 전매특허인 이 표현이 이제는 우리의 일상을 표현하는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최근 들어 언론이나, SNS, 인터넷에서 내로남불처럼 많이 회자되는 말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만큼 사리에 맞지 않는 자기합리화와 상식을 벗어난 행태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내로남불이 당연시되다보면 그 사회는 도덕성이 무너지고, 불신이 불신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특히, 내로남불이 고착화된 조직이나 개인은 신뢰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1980년대 말 유행했던 ‘내 탓이오’ 라는 캠페인이 떠오른다. 가톨릭평신도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이 캠페인은 한동안 우리 사회의 의식을 바꾸는 촉매제로 작용했었다.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잘못을 남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잘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모든 일에는 그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의 중심엔 자신이 있는 것이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끌만 본다는 말처럼 자기 자신과 타인을 다른 잣대와 기준으로 평가하고 자기합리화 하는 내로남불 행태는 더 이상 호응을 얻을 수 없다. 겸허한 자기반성과 내 탓이오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 더 엄격해도 모자란 세상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