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 전 대전문인협회장

 

 

은은한 피리소리 같은 난의 부드러운 선율을 들었는가? 봄에는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가을에는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서는 어떤 향이 뿜어 나올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멋진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떻게 사는 것이 멋지게 사는 삶일까를 먼저 생각해 봐야겠다. ‘멋지게 사는 삶’이란 뜬구름 잡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람되게 보내느냐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첫째로 들고 싶다. 젊은 사람들은 낮에는 자신의 일터에서 보람의 월척을 낚아내고, 저녁시간에는 취미생활로 영(靈)을 살찌울 수 있다면 더 없는 멋진 삶일 것 같다. 이때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삶에 윤활유로 제공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다. 그렇다.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려 무료를 떨쳐 버릴 수 있는 삶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매일 방콕(방에만 콕 박혀 지내는 사람) 여행만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몇 명 정도의 친구가 있을까? 어떤 시인은 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다 했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타인의 추앙을 받는다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공향료를 뿌려 시선을 끌게 하는 것일까? 저절로 그늘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쉼터 구실을 해주는 것일까? 물론 후자이겠다. 웃음은 신뢰의 극한적 표현이라는 말에 동감하며 유머와 웃음이 충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수목원의 연못에는 많은 잉어들이 산다. 그 의상들이 참 화려하다. 고결한 유영(遊泳)으로 한가로이 노닐다가도 사육사나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을 것을 보고는 삽시간에 한 곳으로 모인다. 그 움직임이 날렵하다. 율동적이다. 무언가를 던져주는 사람, 던져주지 않는 사람 중에 그 잉어들은 누구한테로 모이게 되는가? ‘호호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이를 먹고 있는 잉어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월이 흐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가 세월처럼 흐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에 순응하면서 아름다운 내면을 키워나가는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세월에 순응하면서 낮은 곳을 향해 겸손해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추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두려워 할 것이다. 세상을 원망하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욕심을 버리기는커녕 더욱 큰 욕심에 힘들어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또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렵다. 그런 불평들이 자신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정말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육체적으론 세월의 주름이 자리를 잡았지만 정신적으론 청춘으로 살고 싶다. 늘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사랑이 넘치는 그런 충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따뜻한 정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내면을 살지게 하는데 인색하지 않는 삶은 존경할 만한 삶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관대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시간적으로 어떤 도움을 어떤 방식으로 줄까도 고민하면서 살고 싶다. 틱낫한은 ‘몸 안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 안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 안에서 마음을 관찰하라’고 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 대접 안 한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대접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그런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할 일이 너무 많아 눈 감을 시간도 없다는 불평을 하면서, 하도 오라는 데가 많아 수시로 행방불명이 되는, 정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마음이 명주실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멋진 생활을 하고 싶다고 부러워할 수 있는 멋진 삶을 살고 싶다. 많은 사람들한테 오래오래 이름이 기억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초년엔 신맛, 세월의 화살을 맞아 검으면 단맛이 되는 포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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