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蓮) 심어 실을 뽀바 긴 노 부여 거럿다가 
사랑(思郞)이 긋쳐 갈 제 찬찬 감아 매오리라 
우리난 마음으로 매자시니 긋칠 쥴이 이시랴 

 

신웅순 중부대 명예교수

김영(생몰년 미상)의 작품이다. 김영은 정조 때의 무신으로 무과에 등제해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무신으로 7수의 시조를 남겨놓았다. 
이 작품은 현실 생활에 가까이 있는 연, 노끈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 연을 심고 그 연대에서 실을 뽑아 긴 노끈으로 비벼 만들어 걸어 놓았다가 사랑이 그쳐 갈 때 찬찬히 감아 매리라. 우리는 마음으로 맺었으니 사랑이 그칠 리야 있겠느냐. 마음으로 맺은 사랑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맺었으니 떠날 리가 없겠지만 사랑이 떠날 때 달아나지 않도록 노끈으로 동여매 사랑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노끈으로 묶어 보이지 않는 사랑을 시각화·물질화시켰다. 사랑을 매어두고 싶은 심정은 동서고금 누구나 다를 게 없나 보다. 

관운장(關雲長)의 청룡도(青龍刀)와 조자룡(趙子龍)의 날닌 창이 
우주(宇宙)를 흔들면셔 사해(四海)를 횡행(橫行) 할졔 소향무적(所向無敵)이언만은 더러운 피를 무쳐시되, 엇지 한 문사(文士)의 필단(筆端)이며 변사(辯士)의 설단(舌端)으란 도창검극(刀鎗劍戟) 아니 쓰고 피 업시 죽이오니 
무셥고 무셔올 슨 필설(筆舌)인가 하노라 

사설시조(辭說時調)로 무(武)의 위용을 말한 전반부와 문(文)의 위력을 말한 후반부로 나눠져 있다. 관운장의 청룡도와 조자룡의 날쌘 창이 우주를 흔들면서 온 세상을 거리낌 없이 횡행할 때 가고자 하는 곳에는 적이 없으나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글 잘 하는 사람의 붓끝과 말 잘하는 사람의 혀끝은 칼과 창을 쓰지 않고도, 피를 묻히지 않고도 죽일 수 있으니 진정 무서운 것은 붓과 혀라는 것이다. 
관운장과 조자룡의 칼과 창에는 더러운 피가 묻어있으나 문사와 변사의 붓과 혀에는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글과 말이 칼과 창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다. 
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을 뿐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도 어떻게 하겠다는 화자의 주관적인 감정은 개입돼 있지 않다. 이는 당시 경화사족 작가들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일순천리(一瞬千里)한다 백송골아 자랑마라 
두텁도 강남(江南)가고 말 가는듸 소 가너니 
두어라 지어지처(止於至處)ㅣ 니 네오내오 다르랴 

한 순간에 천리 간다고 흰 송골매야 자랑하지 마라. 가는 것은 두꺼비도 강남 가고 말도 가고 소도 간다. 두어라 어디든 이르는 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네나 나나 다 마찬 가지가 아니냐. 
백송골이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꺼비, 말, 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도 살아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화자는 세계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지 어떤 주관적인 생각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18세기의 경화사족 작가들은 이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백성들의 입장에서 세계를 판다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다. 당시 경화사족들의 공통적인 일단의 사유 방식들을 이들의 시조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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