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환(건양대교수, 법학박사)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에서 시작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일탈은 명품밀수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온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조회장 부부를 포함한 3남매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행과 갑질행태에 대한 증언이 쏟아지면서 그들에 대한 비난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명품밀수와 관세포탈 의혹으로 총수일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져서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반복되는 총수 일가의 갑질 사건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회사를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현아 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승무원을 무릎 꿇리거나 30대의 조 전무가 나이 많은 임원에게 함부로 반말하는 등의 행위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회사의 이해관계자가 아닌 자신들의 수족에 불과한 상하관계로 바라봤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직원 1000명 이상이 카카오톡에 익명의 단체방을 만들어 그동안 직접 겪고 들은 총수 일가의 부적절한 행위를 외부로 알리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일례로 총수 일가 탑승 시 응대 매뉴얼에 따르면 승무원들에게 바지 유니폼을 입지 말라, 머리핀은 파란색과 아이보리색을 승무원들끼리 섞어서 착용해라 등 이런저런 매뉴얼이 전달되며, 비행을 마친 뒤에는 사무장이나 팀장급 승무원이 총수 일가의 지적사항 등을 꼼꼼하게 적어서 보고서로 내야 했다고 한다. 도를 넘은 이들의 갑질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기가 찰 노릇이며 마치 자신들을 봉건시대 왕족으로 착각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직원들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관리통제의 대상이자 돈 버는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한진일가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사회의 천민자본주의의 맨얼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천민자본주의는 돈과 이익,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하든지 용납되는 자본주의를 말하는데 현재 우리사회의 자화상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우리의 갑질 문화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적폐가 아닐 수 없다. 갑질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매우 다양하게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있으며 막장드라마로 치닫고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갑질’은 힘의 우위에 있는 권력자가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부당 행위를 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는 갑질 행태는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국회의원들이 나라 돈이나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관광을 다녀오는 일, 프랜차이즈 가맹업체에 대한 본사의 갑질, 감정노동자인 콜센터나 백화점 직원에 대한 고객의 갑질, 운전기사나 경비원을 머슴부리듯 하며 때리고 폭언을 일삼는 기업 오너의 갑질, 장의차량을 막고 동네 앞에서 기부금을 요구하는 갑질 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적폐인 갑질문화는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민정신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갑질문화는 적폐 청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교나 회사, 공직 사회 등을 비롯하여 인권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는 모든 조직에 자체 인권감시제도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갑질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와 비용은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이기에 갑질 문화의 청산은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이다.

갑질문화는 법의 힘만으로 막을 수 없다. 갑질을 뿌리 뽑기 위한 각종 제도의 개선과 함께, 사회전반의 의식 변화도 따라야 한다. 논어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가르침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남이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이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새삼스럽게 요청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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