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열전 2편

보고 싶은 대로 볼 뿐

한국인의 섬이라고 할 만큼 산토리니(Santorini)엔 한국인이 많다. 명성만큼 투명하게 아름다운 섬인 건 맞다. 현지에선 티라(Thira)’라고 부르는 곳이고 기원전이던 어느 날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섬의 일부가 사라져버렸다.

번성했던 산토리니는 전설의 아틀란티스(Atlantis)가 됐고 이 이야기는 섬을 더욱 신비한 곳으로 만들어줬다. 혹자는 이곳을 맑고 투명한 하늘에 파란지붕을 이고 있어 그리스 국기와 같은 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애국심까지 뒤섞이니 이제 산토리니에 안가면 지상낙원을 놓치는 것인가.

그러나 산토리니에는 파란 지붕이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아무리 봐도 없다. 절벽 같은 언덕에 석류 알이 박히듯 촘촘히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 좁은 길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이유는 산토리니의 상징, 파란 지붕을 찾기 위해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골목을 서성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각을 잘 잡아서 네 개의 파란 지붕이 나온다면 대박 성공한 사진이다. 나도 찾다찾다 세 개가 겹치는 부분을 찾았을 뿐이다. 이렇게 파란환상에서 깨고 보니 산토리니 파란지붕은 포카리스웨이트(Pocari Sweat)가 선물한 착각이었다.

그럼에도 산토리니를 파란 지붕으로 생각하는 건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봐서 사실을 왜곡한 경우는 많다. 우린 그 왜곡의 하나를 콩깍지라고 한다. 눈을 막고 생각하는 대로 보기 때문에 어쩌면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만족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콩깍지 전문이다. 내가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

빈산토와인(Vin santo)

산토리니 포도나무는 저렇게 도르르 말려있다. 어느 밭에를 들어가 봐도 산토리니 포도나무는 바닥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그 결과 포도를 딸기처럼 땅에서 딴다. 땅을 오랫동안 베고 누워 산토리니 와인은 풍미가 작열한다고 했다. 참 말도 잘한다. 산토리니는 와인은 꽤 유명하단다.

빈산토와인 한 병쯤 사가는 센스를 발휘하려고 수소문 해보니 산토리니의 와인 자부심은 대단했다. 일단 화산재가 켜켜이 쌓여 기름지고 물 빠짐이 좋아 포도가 자라기에 그만이라고 했다. 게다가 태초부터 머금은 바다의 향기는 빈산토와인을 더욱 황홀하게 했다고 한다.

하도 말을 많이 듣다보니 가격이 궁금해졌다. 그러자 가격이 공개되는데 6~30유로 선이었다. 7000원에서 4만 원 사이다. 이렇게 착한 가격이 한국에 들어오면 열 배로 고공행진 한다.

나는 23유로짜리를 선택했다. 선물하기 위해 좋은 것을 골랐다. 하지만 가게아저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언제나 와인으로 10유로 이상을 결재하면 볼 수 있는 유럽 토박이들 얼굴이었다. 10유로가 넘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맛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하긴 우리나라로 치면 막걸리인데 빈티지(Vintage)에 따라 가격이 변동된다는 생각을 하니 재밌으면서 고급 막걸리라고 4만 원에 판다면 이해는 안 갈 것 같다. 와인입문은 만화 신의 물방울을 봐라. 와인이 갑자기 고급승진을 한 착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와인 값을 오르게 한 일등공신은 체계화시키기 좋아하는 일본인 짓이다. 토익(TOEIC), 토플(TOEFL)도 그들 작품이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 정보와 기술이 들어가면 그들은 자기화 과정을 거쳐나갔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궁술은 궁도, 검술은 검도, 차 마시기는 다도 등 모두 종교와 비슷한 신성함을 가미해뒀다. 그래서 차 한 잔 편안하게 못 마시게 된 것이다. 예는 중요한 것이지만 때론 불편하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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