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 교수

 

전주형 청운대 교수

한 변의 길이가 약 15센티미터 정도인 정육면체 상자가 있다. 옆면은 투명한 플라스틱 창으로 되어 있고, 상자 윗뚜껑 홈에는 레버가 달려 있다. 상자 안쪽에는 플라스틱판이 위와 아래를 수평 이등분하고 있다. 한쪽 옆면에 전원 스위치가 달려 있다. 그것으로 보아 전원을 올리면 상자 안에서 어떤 작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자기장을 보내면 쇠나 자석 같은 금속 조각이 플라스틱판에 달라붙게 되는 상자인 것이다. 상자 밑바닥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작은 사각형 금속 조각이 가득한 상태다. 상자를 흔들자 조각들은 무질서하게 마구 뒤섞여진다. 상자에 있는 전원 스위치를 올리고 윗면 레버를 천천히 당긴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조각들이 중간에 가로놓인 투명판에 붙어서 어떤 모양을 만들었다. 그것은 ‘靈感’(영감)이라는 글자였다. 전원을 넣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가치를 갖게 된다. 마치 죽어있던 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다시 스위치를 내리자 조각들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처음 모습으로 되돌아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질서의 상태가 된다. 가치경영(MBV)을 설명할 때 블랜차드(Blanchard)와 오코너(O’Connor)가 활용한 방법이다.

만약 전자기장이 아닌 손으로 상자 안에 있는 조각들을 맞춰 ‘靈感’(영감)과 같은 글자를 만들려 한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일은 시간만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재미도 없고 성가신 나머지 그것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고통스러울 것이다. 요행이 ‘靈感’(영감)이라는 글자를 맞추었다 해도 전혀 역동적이지 않다. 따라서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을 주지 못한다.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닌 억지스러운 방법을 쓰게 되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달리기나 줄넘기와 같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이나 진배없다. 달리기와 줄넘기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하루 30분 달리기는 만병통치약’이라는 구호를 외쳐도 소용없으며 강요나 협박을 해도 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앞선 사례가 좋다거나 당위성을 내세워 설득하려는 것도 외면당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사람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은 금강석을 깨뜨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럴 때 상자 속 조각들을 움직이게 한 것과 같은 전원이 필요하다. 스스로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주는 것, 가치를 불어 넣는 것, 이것이 곧 영감(靈感)이다.

영감은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영혼을 깨운다.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한 줄기 빛이고 긴 가뭄 끝에 만나는 단비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끈다. 각자에게 맞는 방향을 맞추어 스스로 일하도록 한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와서 우리를 사로잡는다. 마침내 상자 속 조각처럼 그 가치를 발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더욱이 높은 목표를 정하고 예전에는 꿈꾸지 못했던 일에 도전하도록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을 이끌어내 자신의 기대치를 뛰어넘게 한다. 아주 힘든 일도 보람 있게 한다.

문제는 숨겨진 능력까지 끌어낼 수 있는 영감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이다. 상투적이지만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운명의 여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먼저 행동이 있어야 영감이 뒤따르는 것이지 영감이 행동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영감을 받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영감을 받으려고 사람들은 각자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별스런 일을 다 한다. 싯구를 읽거나 명언을 듣거나 창의적 인물을 찾는다. 자연과 만나거나 명상을 하든가 노동을 한다. 그 어떤 것을 할지라도 고독하게 무언가에 몰입하여 땀을 흘리지 않으면 영감은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유레카를 외치는 것은 우연히 아니며 명작이나 명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감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필연이라는 다리를 건너 내 편으로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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