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 논설위원

주위를 살펴보면 뭔가에 심하게 중독돼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약에 비유하며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중독이란 용어는 예외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부정적 표현에 사용된다. 중독은 뭔가에 심하게 빠져있는 상태여서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을 지칭한다. 그래서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오랜 세월 선거를 지켜보면서 선거중독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출마하는 이들이 선거중독 첫 번째 사례이다. 이들은 출마중독자들로 분류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는데도 당사자는 자신감을 보인다. 주변인들은 그저 얼굴을 알리려고 출마하는 것으로 보지만 당사자들은 당선의 확신을 갖고 출마한다. 그들은 절대 떨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마중독자들의 특징은 선거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닥치는 대로 출마한다. 대체 국가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지방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개념이 없다. 그저 선거라면 무조건 출마부터 하고 본다. 이들에게는 소속 정당도 중요치 않다. 공천을 준다는 당이 있으면 그 당이 지향하는 이념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또는 중도인지 전혀 괘념치 않는다. 당적을 자주 옮기다보니 나중에는 불러주는 당도 없다. 그래도 그들은 꿋꿋이 출마를 한다. 이미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출마자에만 중독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운동 중독자들도 의외로 많다. 이들은 선거철만 기다리며 산다. 선거철이 되면 출마자가 자신을 핵심 참모로 당겨 가기를 학수고대한다. 이들 역시 당의 이념적 각도나 정체성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선거 때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수시로 오간다. 자신을 인정해주면 사력을 다하지만 받아주지 않으면 후보와 그 주변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저주를 퍼붓는다. 이들 역시 출마 중독자와 비슷하게 선거철이 다가오면 과도한 흥분 상태에 빠져들어 과대망상 증상을 보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선 또는 본선에서 탈락한 횟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출전 경험을 가진 이들이 이번 선거에도 어김없이 얼굴을 드러냈다. 예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음 선거를 기약한 이들도 벌써 부지기수이다. 선거운동 중독자들도 여기저기서 일어나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달라고 외치고 있다.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후보자를 향해 온갖 독설을 뿜어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꼭 금전 보상이나 감투 보상은 아닌 듯싶다. 선거에 간여하고 나서게 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 중독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선거출마 중독자든 선거운동 중독자든 언뜻 생각하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없다. 뜻한 바가 있어 출마를 하고 선거운동에 몸을 던지는 일은 제3자에게 별다른 피해를 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그들의 습관적 행동이 다수 유권자들에게 참신성 없는 선거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안겨주고 그로 인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은 염려스럽다. 신선한 인물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늘 같은 얼굴이 출마하고, 늘 같은 이들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은 식상함을 안길 수 있고, 나아가 정치 기피증 또는 혐오증을 안길 수도 있다.

줏대 없이 수시로 여러 정당을 넘나드는 선거 중독자들은 다수의 유권자들이 선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모든 선거에 다 나서고, 모든 정당을 다 섭렵하는 출마자나, 지지하는 후보를 수시로 바꾸며 등 돌린 후보자에게 비수를 날리는 선거꾼들은 유권자들의 불신을 살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의 불신은 투표 포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독자들은 자신이 중독임을 알고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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