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믿을만하고 살만한가? 아니면 더럽고 답답하고 힘들어서 얼른 떠나고 싶은 곳일까? 어떤 사람이 되었든 서로 믿고 존중하고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세상은 참 좋다고 말한다. 바로 그런 곳에서 맘 놓고 편안히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나는 할 수만 있으면 사람들을 믿어주자는 편이다. 속고 또 속아도 그렇게 하는 그를 믿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속이고 거짓 하는 그 속에도 어느 무엇으로도 손상될 수 없는 거룩하고 소중한 것이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반상황일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지금과 같은 좀 괜찮은 사회는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만큼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만큼 믿어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믿어주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매우 희망스런 일이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세계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일단 무조건 의심하고 나가야 제대로 그 세계에서는 잘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곳이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들은 다 거짓이고 속임수요 꼼수면서 겉으로 보여주기라고 말한다. 남들이 무엇이라고 평가하든 내 생각과 말과 행동만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곳이 있다. 설령 내 생각이나 행동과 같은 것을 다른 편에 속한 사람이 할 때에도 잘한다거나 좋다는 평가를 하지 않고, 자기 것을 도적질했다고 하면서 비판한다. 나는 그 속에는 들어가 보지 않아서, 겉으로 그렇게 하는 것과 속의 것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하는 그곳은 내 맘에는 전혀 들지 않는 세계다. 정치계다. 국내정치계든 국제정치계든 일단은 상대를 무시하고 불신하고 나간다. 반대로 거짓이나 찬성도 거짓으로 보이는 세계다.

고맙고 좋다고 악수하며 인사하고 돌아서면 또 서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아주 믿을 수 없는 세계가 그곳이다. 그래서 양심에 따라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신물이 난다면서, 더 이상 그 자리에 양심상 앉아 있을 수 없다면서 떠난다. 간혹 괜찮은 사람 중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들은 종종 바보로 취급된다. 그러고 보면 그 세계는 참으로 피곤한 세계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것을 마치 숨 쉬듯이 하는 세계다. 그렇다고 어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하면서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자기가 힘이 있을 때나 없을 때 주장하던 것들이 그 위치가 바뀌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돌변하는 수가 너무 많다. 믿지 못할 세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그런 거짓과 불신과 자기주장만이 판을 치는 그 세계가 우리들의 실질 삶, 참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곳이란 점이다. 거짓과 불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관행이 성행한 곳에서 이것들을 다 닫아버리는 법이나 제도나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약속을 하고도 믿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하여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시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바라던 것들이 급하게 냉랭하게 되어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이나 어떤 단체나 진정성을 가지고 나갈 때 일의 진전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장한 거짓을 속에 깔고 있을 때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 남북관계가 그러하고, 북미관계가 또 그런 모습으로 진전된다. 변덕스런 날씨가 달라지듯이 날마다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를 걱정하면서 바라보게 한다. 무엇인가가 틀어지면 모든 것이 다 미끄러져 나갈 것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 진행된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를 매우 고민스럽게 따진다. 말을 말대로 믿지 않고, 행동을 행동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상대방을 나와 대등한 입장에 두고 존중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라 본다.

아주 순조롭게 될 것 같은 북미 간의 관계가 아주 급하게 위기를 조성하는 관계로 진전된다. 그러다가 홱 바뀌어 풀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미국이 북한을 지나치게 얕잡아보고 어린아이 취급을 하며,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에 대한 승전국의 위압과도 같은 태도에서 유발되었다고 본다. 즉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나라를 공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나라를 이끄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듯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욕을 준다. 모든 것을 먼저 빼앗고 줄 것은 찔끔찔끔 주겠다는 식의 언행은 오만한 자세다. 그러면서 협상한다고 말한다. 관계되는 사람들의 말이 서로 엇갈린다. 당근을 주고 채찍을 들며, 칭찬하고 무시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서 어떤 협상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나는 국내정치계든, 국제정치계든 서로 믿어주는 자세, 서로 존중하는 맘과 실제 정책으로 나가면 좋겠다. 개인 간에 좋은 덕목이라고 하는 것들이 나라와 나라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상대방을 믿고 존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덕목이지 않던가? 바로 그 점이 여야관계로 대결하는 정치계나 적대관계 속에서 협상하는 국제정치에도 적용되면 좋겠다. 엄밀한 의미에서 싸움은 대적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함석헌 선생의 주장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