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전국 명문 고교들의 역사는 대부분 100년을 훌쩍 넘었다. 배재고가 1885년, 인천고가 1895년, 경기고가 1900년, 보성고·양정고·휘문고·중동고·공주영명고가 1906년, 동성고가 1907년, 서울 중앙고가 1908년, 부산고가 1913년, 경북고가 1916년 개교했고, 충청도의 최고 명문고인 대전고는 1917년 개교해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대전고총동문회는 5월 26일 대전고 강당에서 동문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동창회 정기총회와 ‘대전고 100년사’ 발간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대전고 100년사’는 제1권 인물편, 제2권 역사편 두 권으로 발간돼 대전지역 향토사, 특히 교육사 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전고는 1917년 4월 1일 관립경성중학교 대전분교실로 개교한 이후 많은 변화를 겪으며 발전했다.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1년 1월 19일 미군 실화로 교사(校舍)가 전소됐고, 1951년 8월 31일에는 학제 전면 개혁에 의해 재인가를 받았다. 1951년 10월 20일에는 교가를 제정했고, 1955년 10월 18일 야구부가 전국체전에서, 1956년 10월 7일 취주악부가 전국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1957년 10월 경희대 주최 제1회 전국남녀고교생학력대회, 1967년 10월 경희대 주최 제11회 전국남녀고교생학력대회에서 각각 단체우승을 차지했다.

1960년 3월 8일에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 규탄 3·8민주의거를 주도했고, 1964년 3월 5일에는 한·일 굴욕외교 반대 데모를 주도했다. 1966년 11월 3일 교문(校門), 1972년 9월 30일 본관 4층, 1975년 6월 7일 강당을 준공한 대전고는 1977년 5월 1일에는 개교 60주년 기념행사를 갖고 ‘개교 60년사’를 발간했고, 지난해 5월 20일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2000년 5월에는 학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2010년 9월 6일에는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을 받았으며, 2012년 10월 28일에는 신축교사를 준공해 학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1979년 대전지역 고교 평준화 이전에 대전고는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어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대전고는 1917년 개교 때 정원 50명으로 시작해 2017년 현재 4만 명의 동문을 보유하고 있다.

‘대전고 100년사’ 제1권 인물편에 따르면 동문 가운데 학술원 회원 6명, 예술원 회원 3명, 장·차관 33명, 군참모총장 4명(공군 2명, 육·해군 각 1명), 법조인 217명(대법관 7명), 국회의원 40명, 외교관 4명, 은행장 13명, 종합병원장 20명 등이 배출됐고, 대표적 인물로 항일독립운동가인 손양섭·권용두, 한국화의 거장 이종상, 서울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조완규,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향가연구의 대가인 지헌영, 세계적 육종학자 한상기,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방부 장관인 송영무,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건, DB그룹 이근영 회장,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용래 전 서울시장, 박건우 전 주미대사, 호연찬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인이자 소설가인 박경석 예비역 육군 준장, 현대건설 회장과 아시아야구연맹 회장을 역임한 이내흔, 종교학자인 정진홍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전고의 교훈인 ‘순결, 진실, 용기’를 실천해 대전고를 한강 이남의 최고 명문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전고 100년을 빛낸 대표적 인물들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를 청산하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 발전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고, 앞으로는 세계적 인물도 나와 인류 공영과 세계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전고총동창회 소식지인 ‘대능’ 제173호(5월 4일자)에 의하면 대전고 100주년 기념사업 모금액이 21억 6300만 원에 달해 대전고 동문들의 애교심과 애향심이 얼마나 강한가를 잘 보여준다. 모금액은 ‘대전고 100년사’ 발간과 장학기금, 불우이웃돕기 등에 사용돼 대전고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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