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말은 곧 그 사람 자신이다’라고 말한다. 말 속에는 그 사람이 지닌 인격도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언급한 고전이나 잠언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말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힘을 알기에, 지금까지도 좀 더 신중한 언어사용을 당부하는 것이다. 특히 동양에서는 군자의 인격수양을 위한 필수덕목으로 언행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기에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할 줄 아는데, 올바른 언행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인격을 완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재여는 말을 아주 유창하게 잘하였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가 말로 인해 재앙을 당할까봐 항상 노심초사하였다. 하루는 대낮에 낮잠을 자는 재여를 보고 공자가 말하기를,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는 담장을 바를 수 없다.

를 내가 무엇을 탓하겠느냐? 내가 처음에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행동을 믿게 되었는데, 지금은 사람을 대할 때 말을 듣고도 그 행동을 살피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재여 때문이다.”고 하였다. 공자는 재여가 낮잠을 자서 혼낸 것이 아니라, 평소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족하면서 언변만 뛰어난 제자의 잘못됨을 지적한 것이다. 공자는 나아가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행동이 그에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이다(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고도 하였다. 말이 아무리 훌륭해도 행하지 않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행한 뒤에야 말이 따르거나, 적어도 언행이 일치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옛사람들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말이 서툰 사람이 더 낫다고 한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좋은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자기의 뜻과 같아지기를 희망하는 본능적 속성 때문이다. 일단 상대의 생각을 내 생각과 같아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미사여구의 속빈 말들을 끊임없이 늘어놓고 본다. 책임져야 하는 행동의 실천 여부는 뒷전이다. 오직 고상한 척 하면서 위선적인 말들을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본다. 이러한 말들 속에서 실천에 대한 미더움이나 진실성은 애초부터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늘상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의 수많은 공약들이 쏟아진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면서도 서로가 경쟁하듯이 공약 발표만 남발하고 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유권자는 공약을 일일이 비교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후보 본인들도 자신의 공약을 모두 기억이나 할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저 당선만 되고 보자는 일시성 공약일 뿐이지, 국민을 위한 공약이라고는 전혀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공약들도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그래 왔듯 모두의 뇌리 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곤 한다. 선거 전 공약(公約)이 선거 후에는 공약(空約)이라는 당연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예상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는 말을 많이 하는 데 있지 않고, 얼마나 힘써 행하는 가에 달려 있다(爲治者不在多言, 顧力行何如耳)'는 것을 후보자나 유권자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정책선거’는 ‘실천선거’의 또 다른 표현이다. 후보자들은 말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도 세치 혀의 현란한 기교에만 집중하는 후보들을 엄중히 가려내어 심판할 준비를 해야 한다.

누구나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국민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먼저 행동이 앞서야 하는데, 애초에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규율과 제도가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말이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지니려면 몸이 따라와야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므로, “먼저 실천하고, 그 다음에 말하라(先行後言)”는 공자의 말씀을 당선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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